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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은 천벌” 매질로 치료한 의료 흑역사

입력 : 2017-04-22 03:00:00 수정 : 2017-04-21 18:5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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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의사들 전염 막으려 새부리 가면 착용 / 미라 갈아서 만든 분말 만병통치약 사용 / 의료 발전 이전 민간요법·종교행위 치료 등 황당하고 잔혹한 의료역사 뒷이야기 담아
쑤상하오 지음/김성일 옮김/시대의창/1만6500원
새 부리 가면을 쓴 의사와 이발소 의사/쑤상하오 지음/김성일 옮김/시대의창/1만6500원


17세기 중세 유럽의 의사들은 환자를 진료할 때 새 부리 모양의 가면을 착용했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하는 가면의 용도는 전염병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가면의 부리 부분에는 용연향, 장뇌, 정향 등을 넣어 나쁜 공기를 차단하려 했다. 가면을 쓴 의사들은 지팡이를 지니고 다녔는데, 이는 환자에게 매질을 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전염병에 걸리면 천벌을 받은 것으로 여겼는데, 의사가 환자를 매질함으로써 죄를 뉘우친 것으로 간주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기 전의 인간은 갖가지 민간요법과 종교적 행위 등에 의존해 환자를 치료했다. 잘못된 의학적 지식은 환자의 생명을 해치기도 했다. 신간 ‘새 부리 가면을 쓴 의사와 이발소 의사’는 황당하면서도 잔혹한 의료 역사의 뒷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유럽 중세의 의사들이 착용한 새 부리 가면과 복장.
시대의창 제공
1799년 12월13일,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목에 통증을 느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다음날 새벽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났다. 대통령의 위독한 상태가 알려지자, 미국에서 명망 있는 의사 3명이 대통령의 침실로 불려왔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의사는 워싱턴 대통령의 상태를 살펴보더니, 590㎖의 피를 뽑았다. 그러나 그는 피를 덜 뽑았다고 생각하고 1180㎖의 피를 추가로 뽑았다. 이어 두 번째 의사가 대통령의 병세를 살폈다. 앞서 두 차례의 피를 뽑았지만, 워싱턴 대통령의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의사는 다시 한 번 피를 뽑자고 건의했다. 그는 950㎖의 피를 추가로 뽑았다. 세 번째 의사가 도착했는데, 그 역시 1ℓ가 넘는 피를 뽑아냈다. 이렇게 해서 워싱턴 대통령은 발병한 지 10시간 만에 3.8ℓ의 피를 뽑았다. 그것은 인체 내 혈액의 절반이 넘는 양이었다. 결국 워싱턴 대통령은 병명도 모른 채 사망했다.

미국의 20대 대통령인 제임스 가필드의 죽음도 워싱턴 대통령 못지않게 황당하다. 가필드 대통령은 1881년 연설하러 가는 도중 저격당했다. 총알 한 발이 그의 팔을 관통했고, 또 다른 한 발은 등에 맞았는데 몸속에 박혀버렸다. 즉시 10명에 가까운 의사들이 가필드 대통령의 병세를 살폈다. 타운센드 의사가 가장 먼저 손을 썼다. 그런데 그는 소독도 하지 않은 손으로 상처를 비집고 총알을 끄집어내려 했다. 그러면서도 총알을 빼내는 것을 실패했다. 뒤이어 도착한 블리스 의사는 소독도 하지 않은 대롱으로 총알을 파내려 했다. 의사들의 헛수고가 이어지고, 결국 치료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필드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후송됐다. 가필드 대통령은 상처 감염으로 사망했고, 총알이 만든 작은 구멍을 더 크게 벌려놓은 것은 외과 의사들의 손이었다.

의료기술과 보험이 발달하기 전에는 의료인이 턱없이 부족해 의료적 지식이나 배경이 부족한 사람이 조수 역할을 맡은 경우도 많았다. 196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사 크리스티안 바너드는 사람에게 심장이식수술을 최초로 시행해 주목받았다. 그런데 당시 바너드의 수술 조수였던 나키는 의료자격증이 없는 정원사였다. 본래 병원에서 정원사로 근무했던 나키는 병원의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동물실험실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나키는 뛰어난 손재주를 인정받았는데, 소식을 전해 들은 바너드가 나키를 심장이식 수술팀으로 데려간 것이었다. 나키는 이후에도 동물실험실에서 수술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지만, 학력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정원사 신분으로 퇴직했다. 저자는 “아무리 높은 학위를 받은 의사라도 수술 솜씨는 학력과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키가 증명했다”고 말했다.

의료의 흑역사는 끝이 없는 듯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상사병이 치질과 관련 있다고 생각해 환자의 치질 부위에서 피를 뽑았다. 서양에선 중세 이후 18세기까지도 미라를 갈아서 만든 분말이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인류는 6000년 전 늑대의 이빨을 의치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19세기 도굴한 시체나 전사한 병사들의 이빨은 중요한 의치의 공급원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의료 역사의 치부를 들춰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어리석고 끔찍한 시행착오로 보이지만, 의학의 발전을 가져오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우리가 300년 전 의료 행위를 바라보는 것처럼 300년 뒤 후손들도 현대 의학을 황당하게 여기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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