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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웰컴 투 발트3국] 단조로운듯 깊은 울림… 노래는 발트 민족정신의 상징

입력 : 2017-04-19 18:09:46 수정 : 2017-04-19 2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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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여행을 마치며
서울로 향하는 항공기가 낯설지만 친숙했던 발트 3국의 하얀 설원 위를 지나고 있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 탈린까지 남에서 북으로 600㎞가 넘는 긴 여정을 마치고
서해안을 지나 다시 리가로 돌아왔다. 겨울바람을 등에 이고 도착한 라트비아 수도 리가는 따스하다. 추운 날씨가 익숙해져서인지
리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싸늘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해가 뉘엿뉘엿한 광장은 붉은 노을로 물들어 포근한 느낌마저 든다. 지난번 낮에 거닐었던 시내를 노을을 배경으로 다시 돌아본 뒤 호텔로 들어왔다. 발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다.
겨울바람을 등에 이고 도착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의 야경을 다시 만났다. 추운 날씨가 익숙해져서인지 리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꼈던 싸늘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발트’는 리투아니아어, 라트비아어로 ‘희다’라는 의미다. 겨울의 발트 3국은 그 말처럼 온통 하얀 세상이다. 평야는 눈으로 덮여 있고 온 세상이 빛에 반사돼 반짝였다. 살포시 얼어붙은 바다와 해변 위로 하얀 눈이 내려앉아 있으며 먼바다에서 몰려오는 잔잔한 파도는 하얀 포말로 사라져 갔다. 이번 여행을 통해 바라본 3국은 산과 평야, 바다 모두 하얀 세상이었다.

발트해라는 이름은 소련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붙여졌다. 같은 바다는 에스토니아인들의 민요에서 ‘서해’로 불린다. ‘발트 3국’이라는 명칭 역시 소련이 지배를 위해 편의상 붙인 이름일 뿐 공식 명칭은 아니라고 한다. 독립 이후에도 잔재는 남아 지금까지 발트 3국으로 불리고 있을 뿐이다. 내게도 발트 3국이라는 묶음이 익숙하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각자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높다. 리투아니아어와 라트비아어는 한 어군으로 많은 연관성이 있지만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에스토니아어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어족을 이룬다. 인접국의 지역적 유대와 외세 지배를 받은 역사적 연대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각자의 문화에 기반을 둔 독립성이 매우 강하다. 
리가 베드로 성당에서 내려다본 리가 시내 풍광.

여행기간 동안 각 국가의 낯선 언어를 배워보고 싶었지만 라틴계 언어와 공통점이 없는 터라 단기간에 배우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간단한 인사말 외에는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만국공통어인 손짓 발짓이 다소 섞이면서 의사소통에 큰 지장은 없었다.

여행하는 동안, 오랜 시간 외세 지배에도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고 결국에는 평화적인 저항으로 독립을 이뤄낸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중 하나가 민요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각별하다는 것이었다. 문화적 배경과 언어가 달라 멜로디나 내용이 같지는 않겠지만 세 나라 음악은 분위기가 비슷하다. 산과 계곡의 변화가 크지 않고 평야와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이들의 음악 역시 단조롭지만 넓고 풍요로운 리듬이 수없이 반복된다. 처음에는 다소 단조롭게 들렸지만 들을수록 깊은 울림이 가슴에 다가온다. 힘들고 고된 노동을 통한 농민의 삶, 잦은 전쟁과 외세 지배가 불러온 여인의 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이 민요에 담겨 있다. 마치 우리 정서에 녹아있는 ‘한’과 비슷한 정서가 그들을 연결 짓는 듯했다.
리가 대성당의 특이한 문고리.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부단한 지배에 항거하면서 슬픈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민요다. 조국의 아름다움과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은 민요는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 전통은 ‘노래 혁명’으로 이어졌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이르는 600㎞를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끝도 없는 숲과 평야에서 손을 잡고 평화와 독립의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 ‘발트의 길’을 통해 발트 3국 사람들은 무력을 사용치 않고 평화와 독립이라는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평화와 인류 화합에 대한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 잡은 ‘발트의 길’을 통해 긴장이 끊이지 않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우리 현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수백만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참여했던 최근의 촛불집회도 같은 염원이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서는 4년. 에스토니아에서는 5년에 한 번씩 노래 축제가 열린다. 축제기간에는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해외동포와 지방 사람들이 몰려든다. 발트 3국에서 ‘노래’는 독립과 민족의식의 상징이 되어 있는 듯하다.

여행을 하면서 놀라웠던 것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강국을 꿈꾸는 한국처럼 IT 강국으로 성장하려는 에스토니아였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어디서나 무선인터넷 연결이 가능했다. 인구 대비 인터넷 연결 가능성을 따지면 유럽 전체에서 최상위권이라고 한다. 인터넷이 일상생활에 존재하면서 2005년 세계 최초로 전자선거를 실시했고, 2007년 국회의원 선거 역시 전자선거로 치렀다.

주민등록증에는 마이크로 칩이 부착돼 일상생활에 활용된다. 주차권과 버스표 역시 주민등록증을 통해 구입하거나 스마트폰으로 구입한다. 그 덕분에 여행 내내 시내 주차장 곳곳에서 주차요금 지불에 곤란을 겪기도 했다. 시민들이 공공장소에 주차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이유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리가 공항 내부의 모습. 개찰을 준비하는 여행객들로 분주하다.

에스토니아에서 IT산업이 발전한 데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소련 지배 시절 에스토니아 젊은이들은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을 인터넷으로 서방과 교류하면서 해소했다고 한다. 체제 유지를 위해 강요되는 일방적인 인문학 대신 컴퓨터 등 기술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전 국토가 남한의 절반 크기고, 인구도 120만여명에 불과하지만 유명한 인터넷 사이트 핫메일(hotmail)과 인터넷 전화 프로그램 스카이프(skype) 등이 에스토니아 사람들에 의해 세상에 등장하게 됐다.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지리적 위치 하며 넓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정서까지 우리나라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비행기는 핀란드 헬싱키를 향해 리가 공항을 이륙한다. 발트 3국의 하얀 설원 위를 지나 헬싱키에서 옮겨 탄 비행기가 서울을 향하면서 낯선 듯 친숙했던 발트 3국 겨울여행은 끝이 났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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