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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7) 일사천리네팔행 창공만리기서운

입력 : 2017-04-17 15:38:26 수정 : 2017-04-17 15: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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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 트레킹 1일차: 비레탄티 - 김체 - 간드룩
‘거두절미, 어른한테도 이리 표현해도 되나... 선생님이 젊으신께. 

네팔 갑니다. 이제야 한 이틀 준비할 수 있겠습니다. 늘 사는 게 이리 뚝딱입니다. 바쁜 마음과 일정이 말도 짧아진 배경입니다. 2월 23일 출국입니다. 2주 예정입니다. 25일 포카라에 들어갑니다. 구체적 일정 미정입니다. 하지만 안나푸르나 갑니다. 나야풀 쪽으로 시작할 것이니 비레탄티에서 하루 머물 생각입니다.

부탁하실 일 있으신지요?
선생님 뵙는 게 유일하게 잡힌 일정인 셈이네요. 다시 소식 올리겠습니다.’

엄흥길 재단은 네팔 열다섯 곳에 휴먼스쿨을 지었고, 그 한 곳 비레탄티 세컨더리 스쿨에서 명예교장 일을 보며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어르신 한 분 계신다. 수년 전 천산을 넘는 실크로드 40일을 동행하기도 했고, 당신의 저서에 추천서를 쓰기도 했다. 네팔로 향하기 사흘 전에야 메일 넣었다, 산중에서도 페이스북이며 활발하게 소통하시는 당신인지라 바로 열어보시겠거니 하고.

몇 가지 유용한 정보와 함께 랄리구라스 피기 시작하는 마르디 히말 트레일을 권한 것도 선생님 당신이셨다. 

‘혹 비행기회사를 꼬셔서 하루라도 더 빨리 올 수 있으면 금상첨화’ 

젊음은 정녕 나이에 있는 게 아니라 생 자체에 있음을 보여주시는 선생님은 답 메일 끝을 그리 유쾌하게 맺으셨다, 일사천리네팔행 창공만리기서운 덕담과 함께.

선생님은 굳이 한달음에 공항까지 내려와 주셨고, 그길로 비레탄티 마을에서 왔던 택시에 다시 올랐다. 포카라-밀란촉-페디-나우단다-칸데-나야풀-비레탄티(론리 플래닛 정보에 의하면 나야풀까지 버스로 2시간, 90루피. 매일 아침 5시 30분부터 낮 3시 30분까지 30분 간격.)

“차 한 잔 마셔요.”

시간 반쯤 달리다 룸네에서 잠시 멈춰 길가 찻집에서 짜이 한 잔. 비로소 산 걸음이 시작되는 것 같은. 인도 티벳 네팔에서 짜이 없이는 말이 안 되는!

비레탄티 세컨더리 스쿨 미술반 아이들
 

마을 꼭대기의 학교에서는 미술반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짧은 방학 기간인데도. 네팔은 여러 종족들의 전통 명절을 모두 공휴일로 지정하니 학교도 쉬는 날이 많다. 지금은 음력 2월 티베트의 새해 축제 로사르가 시작된 때. 아이들이 그동안 그린 그림과 학교 벽화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곧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

선생님 묵고 계시는 숙소 옆방, 밤새 계곡 물소리가 솔바람처럼 건너왔다. 
일요일이다. 네팔의 한주는 일요일부터 시작된다. 아침에는 포카라에서 받지 못했던 팀스도 이곳에서 받았다. 길가에는 차를 파는 여러 집들이 이어져 있었고, 그 앞에서 집집이 빵을 튀겨내는 기름이 팔팔 끓고 있었으며, 다리 앞에서는 아주머니 하나가 우유를 커다란 물통으로 사고 있었다.
팀스 카드 신청서


마을 맨 위쪽에 있는 비레탄티 세컨더리 스쿨
체크포인트가 있는 비레탄티 마을

어디서고 사람들이 그렇게 나날의 삶을 살아간다. 계곡에선 굴삭기가 아침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개 한 마리가 늘어지게 엎드려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으음, 사람들이 잘들 하고 있군.” 
개팔자가 상팔자라.

늦은 아침 미술반 아이들이 선생님 방으로 모였다. 내 가방에서 부려진 한글 제목의 초코바에다 선생님이 미리 사두셨던(시렁의 소쿠리에 과자를 쟁여놓고 손주들에게 내주시던 우리들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과자들까지 다 펼쳐 섞어서 전교생들에게 나눠주기 위한 꾸러미를 같이들 만들었다.

티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겠다던 선생님은 곧 비레탄티 아래 티벳 사람들 마을로 옮겨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실 거란다. 히말라야 성자가 따로 없다. 아이들은 로지(산장) 2층 식당에 모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아이들 틈에서 한동안 지내도 좋으리. 예술통합교과 교사인 나임에야 더 신명날. 그런데 산이 바삐 불렀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머무르고 싶을 때 머무르기, 이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그러할 것이다. 산을 내려온 뒤 머물러도 될 테지.

미술반 아이들을 위한 24색 크레파스 12통과 초코바 네 가마니(?) 부려놓으니 짐은 딱 10kg이 되었다. 포터를 동행하느냐 마느냐의 선택점. 지고 갈 짐으로는 최고치가 돼버린. 마을에서 포터를 사서 마르디 히말 하이 캠프까지 부려놓고 오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일정이 미리 짜져 있다면 가이드나 포터, 혹은 가이드겸 포터를 포카라 레이크사이드 곳곳의 여행사들이며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하지만 이 여행은 어디로 흐를지 모를 길. 일단 간드룩까지 가보고, 필요하다면 거기서 포터를 구해도 될 것이다. 다음 일은 다음 걸음에!

다정 선생님 하숙집인 로지(산장)의 2층 식당에서 보충 수업하는 미술반 아이들(학교는 짧은 방학 중)


다정 선생님 하숙방에서 전교생에게 나눠줄 과자 꾸러미를 만드는 미술반 아이들

이곳의 버스는 번번이 지연이다.
비레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출발하자 했더니 버스 온다는 주인의 전갈이 급하다. 올라타고 구절양장을 거슬러 간드룩을 향한 종착지 김체에서 내린다. 길은 계속 넓혀지고 있었고, 산을 향해 더 위로 더 위로 가고 있었다. 버스길이 닦이고 있는 먼지 풀풀 나리는 대로를 막 걷노라니 멀리서 버스에서 만난, 친척집을 방문하러 왔다는 구릉인이, 군인이란다, 마카오에서도 6년을 근무했다고, 샛길을 안내해주었다. 그래, 이런 길을 걷고 싶었다고!

산을 내려와 포카라에 이르면, 시간이 난다면 자신의 집으로 오라 초대도 해주었다. 아, 트레킹은 그렇게 시작되었나니. 마을의 길들은 넓적한 돌들이 이어져있고, 한숨 돌리자 싶은 곳은 으레 돌로 만든 쉼터가 있다. 이 많은 돌들을 들어 올리고 쌓은 이들의 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수고로운 손은 사람 사는 동네에 늘 그리 있고, 네팔에선 더 자주 그 소금꽃을 새기게 된다.

“나마스테!” 간드룩 다 미쳐 네팔인 젊은 부부 두 쌍이 인사를 건넸다...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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