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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이 세운 에도, 어떻게 식물도시가 됐나

입력 : 2017-04-15 03:00:00 수정 : 2017-04-14 17: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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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조흥민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조흥민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일본 전국시대를 호령했던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무장(武將)인 이들이 모두 ‘식물’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일본의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신간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에서 일본 막부시대 무사들과 식물의 관계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에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막부가 들어선 일본의 수도로 무장들이 세운 도시다. 습지가 유독 많았던 에도는 자연환경이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특히 온갖 종류의 식물이 많았다. 그런 까닭에 무사들은 자신의 힘을 키우는 한편 식물 가꾸기를 통해 마음을 다스렸다. 일종의 무력과 식물의 미학인 셈이다.

전국시대의 혁명아로 통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이미지와 맞지 않게 꽃을 좋아했다. 막대한 재력과 권력으로 천하를 통일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화려한 꽃을 좋아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벚꽃을 보고 싶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에도시대 화가인 우타가와 히로시게가 그린 ‘가메이도 매화정원’. 식물을 사랑했던 에도 무사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글항아리 제공
전국시대를 끝내고 에도시대의 기초를 닦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전용 약초원을 가꿀 정도로 ‘식물 마니아’였다. 그는 자신이 키운 약초를 달여먹고 경쟁자를 물리쳤다. 이후에는 식물자원을 활용한 식물도시 에도를 세웠다.

꽃을 좋아하는 쇼군(將軍·막부의 수장)을 위해 지방 영주 격인 다이묘(大名)가 지배하는 번(藩)은 진귀한 식물을 재배해 쇼군에게 바쳤다. 번은 또 소속 무사들의 교양과 정신 수양을 위해 원예를 장려했다. 다이묘들 사이에서는 저택의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들의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 전국의 조경 전문가들이 에도로 몰렸다. 이 같은 원예에 대한 높은 관심은 당시 전국시대의 혼란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온 일본에서 무사들의 역할이 줄어든 것이 기인했다.

일부 무사들은 여러 종류의 꽃을 키운 뒤 팔아 수익을 얻기도 했다. 대표적인 품종이 나팔꽃이었다. 당시 나팔꽃 재배가 유행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변종 나팔꽃이 1000여종에 달했다. 일부 하급 무사들은 부업으로 진귀한 나팔꽃을 개량하기도 했다. 변종 나팔꽃을 얻기 위해서는 열성 유전자 간 교배를 해야 하는데, 저자는 에도의 무사들이 유전법칙을 알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무사라는 이미지와 맞지 않게 작고 귀여운 앵초를 키우는 무사들도 있었다. 렌(連)이라는 동호회를 중심으로 품종 개량이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등장한 앵초의 종류만 2000여종에 달한다. 그러나 품질 개량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탓에 기술이 메이지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무사들의 식물 사랑은 문장(紋章)에서도 나타난다. 서양의 귀족들은 동물을 문장으로 즐겨 사용한 반면 에도의 무사들은 식물을 즐겨 썼다.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은 제비꽃을 모티브로 한 세장의 꽃잎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이었던 사카이 다다스구 가문은 들꽃인 괭이밥을 문장으로 썼다. 뽑아도 끈질기게 씨를 퍼트려 살아남는 강인함에 끌린 것이다. 에도시대 하급무사 가문 100여곳은 논에서 볼 수 있는 잡초인 벗풀을 문장으로 썼다. 벗풀잎의 모양이 화살촉과 닮아 ‘승리의 풀’로 불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성을 쌓거나 싸움을 하는 데 식물을 이용하고, 영지 경영에서도 식물을 활용했던 무사들의 면모를 소개한다. 저자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과 권력투쟁으로 날을 세우는 무사들이 섬세한 눈길로 식물을 보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라면서 “무사들은 식물의 특징뿐 아니라 그 매력까지도 잘 알고 있었던 위대한 ‘식물학자’”라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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