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떨까. 부탁∼하면 들어줄까. 여기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쇼 무대와 다를 바 없다.
송준호 안양대 교수· 흥사단 부이사장 |
#2.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병실이 없다고 응급실에 대기시킨다. 직장 동료의 부인이 그 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것을 알고 부탁∼을 하니 하루 만에 병실로 옮겨진다.
#3. 군 입대한 아들이 훈련을 받고 있을 때 고향 선배의 아들이 훈련소 장교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쫒아가서 편한 자리로 배치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들은 사단장의 운전병으로 복무 중이다.
위 사례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부탁∼을 잘하면 능력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좋은 학교에 진학할수록 이런 연줄은 많고 질기다. 우리의 교육열이 높고 일류병이 생긴 것도 실상은 이런 비정상의 인맥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연고사회여서 이런저런 인연만 있으면 부탁~이 통했다. 그리고 그 부탁~에는 식사 대접이나 선물, 거액의 금품이 따랐다.
그런데 지난해 9월 28일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부터는 이런 부탁~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는 부탁~을 하지도 않고,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으려 한다. 부탁~을 한 사람은 물론 부탁~을 들어준 사람도 엄한 벌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불편해하며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과 편안해하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다. 대체적으로 전자는 소위 힘을 가진 사람이거나, 그간 부탁~을 해 이득을 본 사람, 부탁~을 들어주며 향응을 즐기던 사람이다. 후자는 보통 사람들이다. 부탁~할 인맥이 없는 사람, 향응을 제공할 재력이 부족한 사람, 평소 부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국행정원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청탁금지법을 85%가 찬성한다고 하니 대부분의 국민은 후자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의 15% 사람들의 부탁~도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 과거 습관이 남아 있어서 한번은 부탁~을 할지라도 조심스러워하고, 부탁~을 들은 사람도 체면상 듣기는 해도 실제 이행은 하려 들지 않는다.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지 불과 6개월 남짓밖에 안 됐는데 기적과 같은 일이다.
부탁~해요! 앞으로는 쇼 무대에서만 들을 말이다. 설상 누가 공직자에게 부탁~해요! 하면 공직자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공직사회가 쇼 무대인 줄 아세요?”
송준호 안양대 교수· 흥사단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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