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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용의 눈동자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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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1 21:42:29 수정 : 2017-04-11 23: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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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而不同의 길도 못 찾은 미·중 정상
국민이 먼저 각성해 자구책 찾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미·중 정상회담을 보도한 국내외 매체들이 방점을 찍어 전한 소식이 있다. ‘공동성명도, 공동기자회견도 없었다’는 소식이다. 중국 관영매체들만 예외였다. 이것을 쏙 뺀 채 ‘풍성한 성과를 거뒀다’고 전했다. 아전인수였다. 왜 그런 차이가 빚어졌을까. 공동성명도, 회견도 남기지 않은 지난주 회담 결과가 워낙 이례적이어서였다.

지구촌을 쥐락펴락하는 G2(주요 2개국) 정상이 얼굴을 맞댄 자리라면 회담 말미엔 우의를 다지고 협력을 다짐하는 기조의 공동성명을 내는 것이 정상이다. 두 정상이 웃음 띤 얼굴로 보도진을 마주하고 회담 성과를 설명하는 뒤풀이도 건너뛸 일이 아니다. 성명과 회견은 화룡점정(畵龍點睛)에 준하는 필수 절차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생략됐다. 트럼프의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용의 눈동자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눈길이 쏠릴밖에. 그래서 국내외 매체들은 주목했고, 중국 매체들은 애써 외면했다. 각자 보고 싶은 대로 본 것이다.


이승현 편집인
두 정상이 원했다면 눈동자가 있는 것처럼 눈가림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선례도 있다. 1972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가 발표한 ‘상하이 코뮈니케’가 대표적이다. 양국의 첫 공동성명으로, 결국 평화공존의 길을 연 그 코뮈니케는 “국제적 군사분쟁의 위험이 감소하기를 희망한다”는 등의 합의사항만 담은 것이 아니다. 양국은 합의가 불가능한 쟁점들도 담았다. 각자 입장을 별도로 열거하는 파격적 방식으로. 예나 지금이나 예민한 한반도 의제는 어찌 처리됐을까. 미국은 한국을, 중국은 북한을 편드는 기록을 남겼다. 할 말은 하면서도 화해무드는 유지하는 묘수였다. ‘논어’에 나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외교 버전이었던 셈이다.

트럼프와 시진핑, 두 정상은 밟아온 길은 달라도 산전수전 다 겪은 승부사들이다. 화이부동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몰랐을 까닭이 없다. ‘귀에 걸면 귀고리’식의 성명을 내놓고 활짝 웃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왜? 양국 입장이 일반 예상보다, 그리고 양측 짐작보다 훨씬 격렬히 충돌했던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화근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경제 쪽은 혐의가 옅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등 한반도의 명운을 가르는 안보 이슈는 정반대다. 혐의가 짙다. 회담 이후 급속히 악화하는 동북아 안보 정세가 그렇게 말해준다.

미 핵항모 칼빈슨 함 전단이 회담이 끝난 지 하루 만인 8일 호주로 가려던 선수를 돌려 한반도 해역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달 한·미 연합훈련에 참여했던 이 전단이 한반도 해역에 재출동하는 것이다. 칼빈슨 함만이 아니다. 일본에 정박 중인 로널드 레이건 함도 이달 말쯤 전개할 예정이다. 고고도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5대도 다음달부터 일본 요코다 기지에 전진 배치된다. 트럼프는 백악관 안보 라인에 “모든 선택지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 선택지엔 선제타격, 전술핵 재배치,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 제거 옵션 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계적 사고뭉치인 북한은 물론이고 후견자인 중국까지 겨냥한 초강력 압박이다. 한반도가 화약고로 변하는 것일까. 시진핑도 트럼프에 못지않은 ‘스트롱맨’이라지만 가슴은 답답할 것이다.

‘논어’에서 화이부동과 대구를 이루는 말은 동이불화(同而不和)다. 남과 화목하게 지내지만 자기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 군자(화이부동)와는 정반대로, 소인은 겉으론 동화하면서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도 못 내놓은 트럼프와 시진핑은 어느 쪽일까. 아무래도 동이불화의 허물이 커보인다. 핵·미사일 도발로 동북아 정세를 이 지경으로 몰아놓은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북한에 있다. 그러나 공동의 대북 청사진 하나 만들지 못하고 지정학적 위기감을 키우는 G2 또한 면책이 어렵다. 중국 책임은 특히 중하다.

한숨만 절로 나온다. 이럴 때 우리가 동이불화의 허물을 들어 두 정상을 준엄히 질타할 입장이 된다면 그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한국 정부는 미·중 눈치를 살피기에 바쁘다. 이 와중에 한반도 안보 위기감을 조장하는 가짜뉴스까지 난무하니 안팎으로 착잡하다.

45년 전의 ‘상하이 코뮈니케’와 지난주 미·중 정상회담은 우리 모두 간과해선 안 될 공통점을 보인다. 미·중 양국이 한반도를 다루면서도 우리 의사나 선호에는 별반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의 손에 우리 운명이 좌우되는 ‘코리아 패싱’의 망령이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떠돌고 있는 것이다.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현재의 안보 위기감이나 가짜뉴스 등보다 코리아 패싱 쪽일지도 모른다. 2017년의 한국은 45년 전에 견줄 수 없이 부강한 국가다. 하지만 미·중에 비교하면 여전히 봄바람에 흩어지는 벚꽃과 같이 가벼운 체급이다. 이번에 그런 각박한 현실을 거듭 실감하게 된다.

5·9 대선을 향해 뛰는 후보들은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 국면에 온갖 호언장담을 늘어놓는다. 안보 관련 언행도 부쩍 늘었다. 가소롭고 씁쓸하다. 언행에 현실성, 일관성이 있어야 믿거나 말거나 할 것 아닌가. 트럼프나 시진핑을 믿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대선후보를 믿을 수도 없다. 어찌해야 하나. 국민이 먼저 각성할 수밖에 없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100여년 전에 나온 ‘조선책략’이라도 다시 보면서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이승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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