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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벌금 못 내 감옥 가는 '장발장' 한 해 4만명

입력 : 2017-04-10 18:24:52 수정 : 2017-04-11 1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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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약자 설 곳 없는 우리 사회의 ‘그늘’
제주에 사는 자동차 광택업자 임모(50)씨는 지난달 교도소에 갈 뻔했다. 벌금 150만원 때문이었다.

지난해 일하다 고소를 당한 게 화근이었다. 차 외관의 광택을 맡긴 차주가 “차에 없던 흠이 생겼다”며 임씨를 재물손괴 혐의로 고소한 것. 차주는 차량 전체 도색 비용으로 현금 300만원을 요구했고, 임씨가 차를 자신의 동의 없이 사용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임씨는 “고객이 차를 빨리 달라 해 (광택을 낸 차를) 바람에 말리려고 주변을 몇 번 운행한 것일 뿐”이라며 “내가 흠을 낸 게 아니어서 돈을 줄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1월 벌금 5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임씨는 억울한 마음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자동차 등 불법 사용 혐의만 인정돼 벌금 150만원으로 감액됐다. 그조차도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임씨에게는 버거웠다. 한 달을 꼬박 일하고 한 푼도 쓰지 않아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프레더윌리증후군(염색체 이상으로 작은 키 등을 동반하는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셋째를 비롯해 6남매와 함께 빠듯하게 살아가는 그로선 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시가스 요금을 넉 달이나 연체해 가스 공급이 끊길 처지에 놓이기도 하는 등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벌금을 마련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10여년 전 사업이 망하면서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해 아직도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가는 터라 금융권에 손을 벌리기도 어려웠다. 별 수 없이 몸으로 때워야 하는지 전전긍긍하던 차에 ‘장발장은행’이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으로 우연히 알게 된 이 은행에서 150만원을 대출받아 벌금을 완납하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임씨는 “150만원은 있는 사람들에겐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큰돈”이라며 “장발장은행에서 대출 6개월 후부터 10개월간 15만원씩 갚으라고 해 큰 부담 없이 변제할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그나마 임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갇힌 사례는 최근 5년간 연평균 3만8800여건에 달한다.

2012∼14년 3만건 정도였으나 2015년, 2016년에는 각각 4만2689건, 4만2668건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생계형 범죄 등 경범죄자의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벌금형을 부과하고 단기간에 현금으로 완납하게 하는 현행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화여대 강동범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벌금형의 취지는 경범죄자를 수용시설에 보내지 않고도 교화나 재범 방지라는 형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데 있다”며 “벌금을 못 냈다는 이유로 수용시설에 보내 벌금형의 장점이 발휘되지 못한다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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