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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살아도 산이 그립다] (4) 기억은 변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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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14 08:00:00 수정 : 2017-06-12 13: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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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경의 마르디 히말 트레킹

<2017년 2월 24일, 네팔행 2일차: 카트만두>

카트만두 타멜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숙소며 여행사며 식당이며 기념품가게들이며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 마냥 명랑하게 붙어있고, 어깨를 부딪히는 여행자들이 있다. 국내선과 국외선이 출입구만 다를 뿐 같은 공간을 쓰고 있는 트리부반 국제공항에서 여행객들은 거개 이곳으로 모여 네팔 곳곳으로 떠나간다.

타멜과 구 시가지 안에서는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로 사이클 릭샤가 좋고, 여행객들이 자주 방문하는 관광지로 가기엔 연결이 쉽고 운행 간격이 좁은 ‘템포’가 좋으며, 외곽도시로는 당연 버스가 저렴하고, 도시 안에서 저녁이라면 택시가 낫다.

참, 네팔에는 기차가 없다!

그런데, 좋기로는 걷는 게 으뜸이다. 맨발이라면 더 없이(물론 걷기 좋은 포카라에서조차 그리 흔한 광경은 아니다). 신발에서 양말에서 빠져나온 발은 저 혼자 훨훨 날아갈 기세다. 서울에서는 내가 맨발인 걸 사람들이 잘 알아채질 못했고, 재래식 화장실도 맨발로 들어갔던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는 사람들이 조금 멀찍이 돌아서들 갔으며, 아일랜드의 더블린 거리에서는 유리에라도 밟힐까 걱정들을 해주었다.

여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보고 ‘그냥’ 웃는다. 이국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 하나는 낯선 곳에서 저 멋대로 지내보는 것. 그럴 때 발가락 사이로 간들거리는 바람은 유영하기 좋은 따뜻한 물 같다.

맨발에 실린 몸은 자신의 무게를 최소화하는 법을 찾는다. 발레를 할 때나 살풀이를 출 때 딛는 발걸음처럼 몸은 사뭇 가벼워지고, 그러면 내게 붙어있던 일상의 고단까지 다 털리는 기분. 가만가만 속삭이는 벗의 위로가 따숩게 온몸으로 번져오는 것 같은 그 달디단 자유로움이라니.

그런데 세상천지 맨발로 다녀도 딱 한 곳 그러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내가 사는 산마을의 읍내.
혹 이상한 엄마가 되어서 그것이 아이에게 말로 닿을까 봐. 에미 자리란 게 그런 거더라.

타멜 거리는 바자르(시장)로 이어지고 바자르는 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으로 연결된다.
관광객들에게는 입장료를 받지만 현지 사람들은 세계 문화유산 유네스코 지정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장을 보러 가고, 장사를 하고, 출근을 한다. 네팔에서는 그렇게 생활에 유물이 살아있다.

카트만두에서 하루를 묵고 움직이기로 했다, 국내선이 연기는 기본이고 결항도 잦은 네팔이라 혹 하루 만에 포카라로 비행편이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속 편히. 잘 쉬면서 여정을 준비하자고
가난한 여행자로서는 드물게 아침이 포함된 괜찮은 호텔을 떠나기 직전 예약했더랬다, 남은 날들은 거칠 수 있을 것이므로. 행여 트레킹 준비에서 놓친 게 있다면 준비도 할 시간을 번.

지내는 동안 환율차는 있지만 대략 1달러=1천원=100루피 개념으로 지냈다. 타멜 거리에서 달러가 현지통화처럼 유통되니 타멜에 들어가며 쓸 환전 정도만 공항에서 해도 될. 공항에서 타멜까지 버스 25루피, 택시 600루피. 

“타멜 가요!” 마침 호객하는 안내남 있어 버스에 올라탔네.

타멜을 걷고 있다. 사람 하나 생각난다. 그가 떠났다. 내가 떠나왔는지도. 누군가는 가고 또 누군가는 오겠지만 그 ‘자연’스러움을 알고도 빈자리는 결코 익어지는 법이 없다. 인간의 안타까움은 늘 ‘유한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는지. 

‘다만 지극하게’ 살다가야겠다. 여행지의 아쉬움도 그것이 갖는 유한성 때문에 더한 게 아닐지. 그래서 또 가기도. 그래서 네팔에 다시 왔고, 그래서 또 타멜을 걷는다. 타멜은 바자르(시장)로 이어지고 다시 더르바르 광장(카트만두 더르바르 광장. 네 곳의 더르바르가 있으니 길을 물을 땐 앞에 어느 더르바르인지를 분명히 붙여서 말해야 한다).

지나가서 이미 불변의 형태로 남았을 기억이란 것도 사실은 기억 안에서 자리를 옮긴다는 걸 우리 다 안다. 그것에 대해 전범으로 읽을 만한 영화가 홍상수의 <오! 수정>. 같은 시간을 같이 지났으나 남자와 여자의 기억은 달랐다. 

기억은 그렇게 휘기도 하고 꼬이기도 하고 연해지기도 하고 짙어도 진다. 타멜도 다르지 않았다. 기억하고 있던 것들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옮겨 아주 다른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사람의 기억은 그렇게 변주된다.

갔던 곳을 다시 가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낯선 것이 주는 모험보다는 아는 곳이라는 안정감이 더 편한 까닭이기도 할 테지만 그곳이 어떤 시간을 흘러 보냈는가를 더듬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그 시간 동안 내게 어떤 일이 있었던가를 반추하게도 하는. 
2014년 11월 ABC 트레킹에서는 마당에 널린 빨래와 아이들이 눈에 자주 담겼다. 불투명한 여정이어 내일 일을 더욱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은 기억의 대상을 달리 고르게 될 거라는 정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저녁 택시에 올랐다. 꼭 가야만 할 데가 있다!  

(계속)

옥영경(자유학교 물꼬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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