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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썩 반갑지 않은 ‘미래형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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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9 21:40:27 수정 : 2017-04-11 18: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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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 하나가 밥 한 끼를 대신할 수 있다면.’

허기가 속절없이 밀려오는데도 막상 뭔가를 찾아 먹기 귀찮을 때면 이런 상상을 한다. 일에 치여 밥 먹을 시간이나 여유가 없을 때도 음식물을 씹고 삼키는 과정을 건너뛰고 싶은 충동이 든다. 알약이 밥의 대용식이 되는 세상은 그저 공상과학(SF) 영화의 한 장면일 뿐일까.


박진영 사회부 기자
아닐 것 같다. 최근 일명 ‘미래형 식사’가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인기다. 이 식사는 정말 간단하게 즐길 수 있다. 분말이 담긴 페트병에 물을 넣고 병을 뒤집어 몇 번 흔들어 주면 끝. 기호에 따라 물 대신 우유나 두유를 넣어도 좋다.

분말에는 단백질과 식이섬유, 탄수화물 등 사람이 매일 섭취해야 하는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 있다. 페트병도 성인 손만 한 크기여서 한 손에 들고 언제 어디서든 한 끼를 뚝딱 해치울 수 있게 했다. 이런 장점을 들어 관련 업체들은 저마다 ‘바쁜 당신에게 가장 진보된 형태의 식사’, ‘식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 고민으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라고 외치면서 바쁘게 사는 직장인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전 ‘아점’(아침 겸 점심) 대용으로 사먹어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분말은 입자가 고와 물과 섞는 데 2분 남짓 걸렸다. 맛도 나쁘지 않았다. 물을 넣었는데 곡물 두유 맛이 났다. 포만감도 괜찮았다. 공복에 3분의 2 정도 먹고 나니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10분도 안 돼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여유로워진 점심 시간에는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업체들이 홍보하는 대로 뱃속 포만감은 4시간 가까이 지속됐지만 ‘정신적 포만감’이 별로였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름 아닌 ‘혼밥(혼자 밥 먹기)’에 있었다. 평소처럼 마주 보고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사람 없이 혼자 페트병만 들이켠 식사가 주는 허전함이 마음 한구석에 침전물로 남은 것이다.

그러다 문득 식사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됐다. ‘끼니로 음식을 먹음.’ 식사의 사전적 정의다. 그러나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게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거나 새로 맺어주게 하는 훌륭한 도구다. 한집에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가족뿐 아니라 유대 관계가 끈끈한 친구나 동료 등을 ‘식구’(食口)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1인 가구 증가세와 맞물려 이미 혼밥이 대세인 시대다. 밥 대용식과는 별도로 편의점과 마트에서는 전자레인지로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편의점 음식만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한 상을 차릴 수 있을 만큼 간편식 종류도 다양하다. 알약으로 끼니를 때우는 SF 영화의 한 장면이 현실화할 날도 머지않았다고 본다. 많은 사람이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세상이나 편리함을 추구하는 세태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아서다. 그러나 간편식과 대용식이 진화하고 미래형 식사가 보편화할수록 식사자리를 통해 다지던 인간적 유대의 고리가 느슨해질 수 있다. 이에 따른 부작용을 치료하기 위해 또 다른 알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래형 식사의 등장이 썩 반갑지만은 않다.

박진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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