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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60년 이발사 외길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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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5 09:00:00 수정 : 2017-04-04 21: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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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금당실마을 ‘대중이발관’의 가위손 박용직 할아버지
박용직 이발사가 단골손님인 변명 할아버지의 머리를 정성스레 깎아주고 있다.
“나 왔네.” “어 왔능겨?” 50년 이발지기 변명(78) 할아버지가 웃으며 들어온다. 오늘 두 번째 손님이다. 박용직(75) 이발사가 하얀 가운을 꺼내 입는 동안 손님은 언제나 그랬다는 듯 자연스럽게 가운데 의자에 앉는다. 60년 경력의 이발사가 손때 묻은 가위로 이발을 시작한다. “어떻게 해줄까?” “허던 대로 해야~”

고무타이어를 잘라 만든 이발관 간판과 이발소 표시등이 눈길을 끈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마을 입구에 자리한 ‘대중이발관’에는 열일곱 나이에 이발을 시작해 평생 이 길을 걸어온 박 할아버지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래된 이발용 의자 세 개와 연탄난로, 타일을 붙여 만든 세면 개수대가 세월의 흔적을 보여 준다. 먹고살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부친의 말씀대로 하다 보니 파란만장, 우여곡절 끝에 고향에서 대중이발관을 개업해 지금껏 운영하고 있다.

이발을 마친 뒤 머리 모양이 잘 됐나 보기 위해 머리 분을 바른 후 머리 층을 확인하고 있다.
머리를 감겨 주고 있다. 아직도 비누를 사용한다.
“보조할 때는 가위를 못 잡았지. 머리 감겨주고 면도하고 그렇게 4년이 지나니까 가위를 주더라고.” 머리를 깎으며 옛날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때는 돈이 너무 없어서 어려웠어. 청량리에서 영등포까지 전차가 2원 50전이었는데 돈 아낄라고 그 먼 거리를 걸어 다녔어. 여름에는 아이스께끼 장사도 했지. 그래도 기술을 배운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르겠더라고.”

면도는 늘 신경이 쓰인다. 조심스레 면도칼을 다루는 노 이발사의 표정이 재밌다.
박 이발사가 변 할아버지의 머리를 드라이로 만지고 있다. 바로 논으로 일을 나가 모양이 망가질 머리지만 정성을 다한다.
이발 도중 담배를 사러 박래원(78) 할아버지가 들어서자 서로 인사를 나눈다. “오랜만일세.” “그러게 간만여~” “로타리해서 비니루 씌워야 하는데 시간은 없구 큰일이네. 농번기에 이발도 하고 세월 좋네. 오전에 퇴비 여덟 포대 뿌렸더니 힘들어 죽겄네.” “난 어제 혼자 100포대 뿌렸어.” 변 할아버지가 누운 채로 맞받아친다. 고추종자를 심어야 한다는 얘기로 시작한 농사 이야기는 담뱃값 인상 이야기로, 또 늘 그렇듯 정치 이야기로 이어진다. 금당실마을 대중이발관은 시골 할아버지들의 사랑방이다.

이발관에 진열된 손때 묻은 가위.
개업 선물로 동네 목수에게 받은 낡은 의자와 목 받침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발을 마치고 면도가 시작되자 이내 긴장감이 흐른다. “아무래도 면도가 가장 신경 쓰이지. 칼 들고 하는 일이니까.”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 면도에 집중한다. 비누로 머리를 감은 변 할아버지의 “아 시원하다~” 외마디를 마지막으로 40분이 넘게 공들인 이발이 마무리된다.

거품을 만들어 내는 오래된 면도솔.
개업 선물로 동네 목수에게 받은 낡은 의자와 목 받침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농촌인구 감소로 이발관을 찾는 손님이 턱없이 줄었다. “예전에는 아침에 시작하면 해가 질 때까지 자리에 한 번도 앉지 못했어. 손님이 늘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오늘 손님은 더 이상 오지 않을 모양이다. 농촌의 봄은 분주하다. 이발을 깔끔하게 마친 변 할아버지도 논으로 급히 향했다. 주인장도 간간이 찾아오는 담배 손님만 맞고 가지런히 정리된 가위들만 매만진다.

“아버지 말대로 이발 기술 배우길 잘했지. 4남매 대학까지 다 보내고 이 나이 먹어서도 일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아.” 이발사로 한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노 이발사의 너털웃음에서 만만치 않았을 그의 인생이 보인다.

예천=글·사진 이제원 기자 jw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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