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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트럭운전사에서 세계적 성악가로… “기적을 믿어요”

입력 : 2017-04-04 21:11:50 수정 : 2017-04-04 21: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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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과 첫 내한공연 갖는 미국인 테너 칼 태너 “10년 동안 제 에이전트에게 물어봤어요. 한국에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일본·홍콩 무대에는 여러 번 섰는데 한국에서는 한 번도 제안을 못 받았죠. 이번에 연락 오자마자 ‘오케이’ 했습니다.”

미국인 테너 칼 태너(55)가 처음으로 한국 관객과 만난다. 6∼9일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하는 ‘팔리아치&외투’에서 주역을 맡았다. 최근 서울 서초구 팔레스호텔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 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아시아권 주요 무대 중 못 서본 곳인 데다 그의 형제가 한국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들이 도대체 한국에서 언제 작업할 거냐 묻곤 했다”며 “이번에 한 달간 머물렀는데 한국 문화가 매우 좋고 음식도 맛있다”고 만족해했다.

50대에도 뛰어난 기량을 보이고 있는 성악가 칼 태너는 “오래 노래하려면 20대부터 너무 달려들지 마라”며 “성악가의 수명은 초반에 잘못된 레퍼토리를 많이 자주 부를수록 줄어드는 것 같다. 이 업계에서는 영리하게 ‘노’라고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제현 기자
그는 국내에는 덜 알려졌지만 세계 최고 공연장에 서온 성악가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영국 로열 코벤트 가든 등에 숱하게 올랐다. 2015년에는 이번에 공연하는 ‘팔리아치’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호평 받기도 했다. 지난해 4월에는 영국 로열오페라에서 ‘외투’를 공연했다. 지금은 세계를 누비지만, 그는 한때 성악과 영영 인연을 맺지 못할 뻔했다. 음악대학 졸업 후 고향에 간 그는 몇년간 대형트럭 운전사로 일했다. 밤에는 현상금 사냥꾼으로 나섰다. 그의 운명을 바꾼 건 1980년대 한 토요일 오후였다.

“저는 기적을 믿어요. 원래 주중에만 일하는데 상사가 갑자기 토요일에 일을 맡겼어요. 트럭을 몰고 나갔죠. 꽉 막힌 도로에 멈춰서서 라디오를 틀었어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생중계를 하더라고요. 플라시도 도밍고의 ‘토스카’를 따라 불렀어요. 그런데 옆차선에 있던 여자가 경적을 빵빵 울려요. ‘방금 그거 당신이 불렀어요’ 묻더군요. 그렇다고 했죠. ‘당신,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트럭 운전사를 할 사람이 아니다’ 하더라고요.”

사무실로 돌아가니 그의 상사도 도밍고를 들었다며 ‘자넨 트럭 운전사 할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집에 가니 초등학교밖에 못 다닌 아버지가 그를 불러 세웠다. 아버지는 ‘라디오에서 도미오 어쩌고 하는 사람이 나오더라. 네 노래가 그 사람이랑 비슷해. 얘야, 한번 해봐’라고 권했다. 일주일 후 그는 70달러만 들고 뉴욕으로 갔다. 우연히 들른 바에서 음료값 대신 노래를 불렀다. 마침 그 자리에 산타페 오페라단의 단장이 있었다. 명함을 건네며 오디션을 한번 보러 오라고 했다. 

“졸업한 지 6년이나 지난 때였어요. 오페라 아리아도 잘 기억이 안 났어요. 오디션에서 ‘토스카’ 아리아를 두 곡 부르고 또 뭘 부를 수 있냐고 해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댔죠. 웃더라고요. 제가 노래를 끝낼 즈음 심사위원 8명 중 7명이 눈물을 흘렸어요.”

그는 “2007년에 이 곡으로 앨범도 내서 크게 성공했다”며 “이 노래로 백악관, 바티칸에 갔고 그래미상 후보에도 올랐다”고 전했다. 그는 취미도 색다르다. 보석 세공이다. 15살 즈음 보석에 빠져들었다. 대학 시절 보석세공사 아래서 제자처럼 일했다. 지난 30년간 혼자 만든 보석 디자인만 수백개다. 지난해 투자 제안을 받고 보석 사업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웹사이트를 열 때만 해도 “성탄절 전까지 20, 30개라도 주문이 들어오면 재밌겠다”고 여겼지만 두 달 사이 주문 6000여건이 밀려들었다.

그의 극적인 인생은 영화로도 만들어질 전망이다. 5년 전 영화 배우 마이클 키튼 측이 영화화를 제안해왔다. 대본은 일찌감치 나왔고 올가을 크랭크인에 들어갈 듯하지만 “다 찍고도 극장에 걸리지 못하기도 하는 게 할리우드”라 김칫국부터 마실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팔리아치’의 카니오, ‘외투’의 루이지를 연기한다. 그는 지금껏 카니오 역할은 55번, 루이지 역은 48번을 했다.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푸치니의 ‘외투’는 모두 사실주의 오페라다. 실제 삶의 신산함을 무대에 옮겼다. ‘팔리아치’에서 유랑극단 단장인 카니오는 아름다운 어린 아내와 살지만 의처증을 갖고 있다. 아내의 외도를 확인한 그는 공연 도중 아내를 살해하고 만다. ‘외투’의 남편은 배에 사는 가난한 선주다. 그 역시 아내가 다른 남성을 만나는 걸 알게 되고, 두 사람을 죽여버린다. 태너는 “합창단, 드라마, 감정, 노래 모든 면에서 1막짜리 오페라 중 가장 큰 작품들”이라며 “보통 두 작품을 함께 공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따로따로 공연해도 충분히 어려운 작품들인데 두 역할을 한 회에 공연하는 자체가 예술이자 기술”이라며 “제게 좋은 도전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또 불러준다면 꼭 오겠습니다. 이왕이면 ‘아이다’로 오고 싶다고 오페라단 측에 언질을 넣고 있어요. 다음에는 초등학생 아들도 데려오려고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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