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에는 폐선 하나가 누워 있다고 오래전 소설에 쓴 적이 있다. 칠백 년 동안 바다 밑 깊은 뻘 속에 묻혀 있던 신안 앞바다 목선처럼 조각난 마스트는 좌심방 입구에 침처럼 꽂혀 있고, 이물 쪽 갑판 쪼가리들은 우심실 두꺼운 심장 근육에 고르게 박혀 있다고, 평상시에는 그저 묵지근할 뿐이지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하면 통증이 온다고, 산에 오르거나 뜀박질을 할라치면 내 심장은 불에 달군 것처럼 아프다고, 이런 재난을 피하려면 가급적 흥분하지 말아야 하고 천천히 걸어야 하고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심호흡을 한 뒤 서둘러 잠 속으로 달아나는 수밖에 없다고.
망자의 유품을 건졌던 바다로 다시 돌아가는 인물은 격렬하게 배 바닥을 때리는 파도소리에 잠이 깬다. 배가 좌우로 위아래로 심하게 흔들리자 그는 꽃상여에 실린 관 속에 누운 망자가 의식이 남아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여꾼들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거리며 이승이라는 바다를 떠날 때도, 배 밑창에 누워 물마루를 오르내리는 느낌과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바다 밑에서 뒤늦게 올라온 별들의 거처를 목격한 남은 이들의 심장과 심정이야 말해 무엇할까.
산수유 꽃은 두 번 피어난다. 처음에는 알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겉꽃잎이 먼저 피고, 다시 겉꽃이 열리면 속꽃잎이 별처럼 화사하게 터져나온다. 산수유 꽃은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지 않는다. 다만 무리로 피어 노랗게 울 때 그 꽃다지 아래 서면 온 가슴이 흔들려 어지러울 수 있다. 저 낡고 헤진 세월의 어둠 속 남은 별들도 부디 산수유처럼 터져 나와 오래 하늘에서 빛나기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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