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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음악 진보와 보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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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5 00:58:55 수정 : 2017-04-11 1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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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인정하지 않는 우리 사회 / 진영대결로 이득 보는 세력에 이용만 당하는 건 아닌지… / 공통의 역사 존중하는 지혜를 최순실 사태와 함께 논란이 된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는 소위 특정 성향의 문화예술계 인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특정 성향이란 진보 문화예술인을 말한다. 문화예술에서 진보와 보수는 어떤 측면에서 다른지 의문이 든다. 정치적 진보는 곧바로 미학적 진보로 이어지는 것일까.

음악에 국한해보면 서양 클래식음악의 역사에서 진보와 보수 양대 진영은 항상 있었다. 보통 때에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다가 시대가 바뀌는 시점에서는 그들의 갈등이 제법 크게 부각되기도 했다. 한 예로 음악의 르네상스 시대가 끝나고, 바로크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작곡가와 비평가들이 옛 음악과 새 음악에 대한 논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옛 음악을 고수하고자 하는 보수와 새로운 양식의 음악을 추구하는 진보의 갈등이었다. 그러니까 예전에 음악에서의 진보와 보수는 음악 양식의 문제였지 정치적 이념의 문제는 아니었다.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학
19세기 중엽 낭만주의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독일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벌어졌다. 이 당시의 대결은 언론과 양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까지 내세워 요즘의 정치 상황과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됐다. 독일 음악의 미래를 대표한다고 주장한 바그너파는 진보 진영으로 간주됐고, 음악이 음악 이외의 내용을 표현할 수 있다는 미학관을 내세웠다. 바그너파의 든든한 후견인은 프란츠 리스트였다. 그는 프로그램 교향시의 창시자로 음악의 표제적 내용을 강조한 인물이었다. 반면 보수파는 요하네스 브람스를 내세우며 순수 기악음악인 절대음악을 옹호했고, 자신들이 진정으로 독일 전통을 지켜나간다고 강조했다. 브람스 뒤에는 직전에 작고한 로베르트 슈만이 버티고 있었다. 진보 측이 택한 미래의 장르는 오페라였고, 보수 측이 택한 전통의 장르는 교향곡이었다. 이렇게 양 진영이 추구하는 목표가 분명히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도 않았다.

바그너와 브람스 뒤에는 이들의 대결을 부추기고 즐기는 비평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언론 매체를 이용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바그너와 브람스는 서로 음악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증언이 여러 곳에 기록돼 있다. 특히 브람스는 사적인 자리에서 바그너 음악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 두 진영의 대결 상황을 자세히 보면 이들의 진영논리는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브람스의 피아노협주곡이 초연됐을 때 오히려 진보 쪽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또 같은 진영인 리스트의 표제음악과 바그너의 오페라는 미학적으로 서로 상충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한스 폰 뷜로우는 리스트와 바그너 편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으나 자신의 부인인 코지마가 자기를 버리고 바그너에게 가자 곧바로 브람스 진영으로 옮겨갔다. 독일 음악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을 상징하는 ‘3B’는 바로 뷜로우가 만든 말이었다. 바흐와 베토벤을 잇는 인물로 브람스를 상정하기 위해 그들 이름에서 첫 글자를 따와 만든 말이다.

역사적으로 독일 음악의 미래는 어느 진영이 이끌었을까. 19세기와는 달리 20세기 초의 최고 독일 작곡가는 오히려 브람스를 진보적인 작곡가라고 평가했다. 반면 ‘3B’의 아버지 격인 바흐는 대표적인 보수 작곡가였다. 그런데 바그너와 브람스 양 진영이 자신들의 상반된 이념을 대표하는 음악의 뿌리라고 강조한 작곡가는 공통으로 베토벤이었다. 자신들의 공통의 역사를 인정하면서도 진영 논리에 갇혀 다름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블랙리스트가 아니어도 요즘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심지어 이를 당연시 여기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진영의 대결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게임에 우리 모두가 무심코 동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모두에게 공통으로 내려오는 그 역사를 받아들이면 우리의 에너지는 분열이 아니라 한곳으로 모여지지 않을까.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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