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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트루먼 이정미 그리고 김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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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3 21:59:52 수정 : 2017-04-11 1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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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영장 ‘더 큰 이익’이 기준
법치주의 완수는 시대적 과제
곁가지에 집착하면 자해행위
지도자는 결단하고 책임져야
제2차 세계대전은 지구에 평화를 가져다 주었다. 세계사에 70여 년간 평화가 이어진 적이 없다. 국지전이야 벌어지지만 강대국끼리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가 핵무기 등장 때문이다. 핵무기가 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지구의 집단자살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래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노벨평화상은 원자폭탄을 개발한 로버트 오펜하이머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역설적으로 들어야 하지만, 이 말은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암시한다.

하라리의 논리를 조금만 확장하면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도 평화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트루먼은 1945년 8월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했다. 처음으로 지옥의 공포를 지구인에게 체험시킨 장본인이다. 트루먼의 정신적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일본이 극도로 잔인한 짐승이라고 해서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전쟁에 잘못이 없는 일본 여성과 아이들이 끔찍한 피해를 볼 거라는 생각은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트루먼의 판단기준은 ‘지도자의 책무’였다. 미군이 일본에 상륙해 전쟁을 끝내려면 수만명의 인명피해가 추정되는 상황이었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 그 길이 지옥행이어도 트루먼은 핵무기 버튼을 누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원폭 사용의 결과는 참혹했다. 그러나 트루먼의 고독한 결정은 결과적으로 지구촌 평화 시대를 열었다. 선택의 잘잘못을 넘어 인류의 진보에 기여한 것이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대행의 심적 고통도 트루먼 못지않았다고 봐야 한다. 헌정 사상 대통령 파면은 처음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두려움, 중압감이 얼마나 컸을까. 세상은 찬반 세력으로 갈라졌고 탄핵 반대자들의 저주는 섬뜩했다. 국가 분열과 국격 추락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매 순간 그랬겠지만 특히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하는 순간 역사 앞에 맨몸으로 마주 선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 대행이 읽은 판결문은 미괄식이다. 막바지에 고민의 결정체가 나온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는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다.” 이 대행과 7인 재판관들의 결정기준은 ‘헌정 질서’였다. 나라를 반듯하게 세우는 데엔 헌법 수호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봤으니 전원일치 결정이 나올 수 있었다.

고독한 결정의 시간 앞에서 고민 중인 또 한 사람은 김수남 검찰총장이다. ‘파면된 전 대통령’이면서도 동시에 ‘피의자’인 박근혜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두고 장고하고 있다. 김 총장은 “법과 원칙만 갖고 판단하겠다”고 했지만 속은 복잡한 것 같다. 자신을 임명한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데 대한 부담감, 국가적 분열과 국격의 추락, 대선 정국에 미칠 파장 등 고려할 게 많을 것이다. 여론도 갈리고 있다. 일부는 “포승줄 묶인 박근혜를 보고 싶은가”라며 불구속 재판으로 정의를 세우자고 한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으므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하자는 주장이다. 여론의 무게 추는 다른 쪽에 쏠려 있다. 많은 사람들은 “부하들이 대거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글로벌 기업인마저 돈을 준 이유로 구속됐다”며 공평한 법 적용을 요구한다.

“The buck stops here.” 트루먼이 최초의 원폭 투하를 승인하면서 그랬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고독한 결단과 책임이 모여 역사를 앞으로 이끈다. 박 전 대통령은 그 길을 가지 않았는데, 김 총장마저 좌고우면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안의 본질이 뭔지 판단하고 그에 따라 기준을 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과제는 ‘법치 수호’일 것이다. 그게 더 큰 이익이라고 판단되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게 순리다. 공연히 곁가지에 집착해 시간을 끌고 논란을 키우면 자해행위가 될 뿐이다.

백영철 대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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