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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자. 은화야 다윤아 현철아 영인아 집에 가자.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도 집에 가자. 권재근씨 권혁규씨 이영숙씨도 이제 집에 가자. 지금도 돌아오지 못한 제자들을 찾고 있을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 망망대해에서 선내를 뒤지고 있을 김관홍 잠수사님, 더 구하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나 다시 맹골수도의 차가운 물 속을 헤매이고 있을 김홍경씨. 1반 해인 민지 민희 수경이 수진 영경 예은 주아 현정이 지성 성빈 소영 미지 수연이 연화 가현 고운이. 2반 수정 우영 채원 민지 소정이 수정 주희 지윤 수빈 지현이 정은 주희 혜선 지나 온유 유정이 민지 솔이 혜경 하영이 지아 서우 세영 유림이. 6반 태민 순범 동영 동협이 민규 승태 승혁 승환이 새도 재능 우진이 호성 건계 다운 세현이 영만 장환 태민 현탁 원석이 덕하 종용 민우. 돌아오지 못한 친구를 찾고 있을 너희들도 이제 집에 가자. 긴 수학여행이 끝났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아저씨 아줌마들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가자.

세월호 참사로 희생한 안산 단원고2학년 학생들이 사용한 교실을 임시 이전하여 재현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이 21일 경기도 안산 교육지원청 별관에 만들어져 일반에 공개되었다.
안산=서상배 선임기자
미안하다. 너희들이 물 속에 빠졌을 때 올림머리 하고 나와야 하는 대통령을 뽑아서 미안하다. 지금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지를 모르는 사람을 국가의 원수로 뽑은 내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 그 지도자가 자리에서 쫓겨날 때까지 살아남아서 미안하다. 구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 다녀오니 너희는 차가운 바다속에 잠기었다. 112라도 전화 걸어서 미친 사람처럼 욕이라도 할 걸 그랬다. 당장에 진도로 달려갈 걸 그랬다. 칠흑의 밤이 찾아왔다. 에어포켓에서 살아남은 전례가 있었단다. 외국에서는 그랬단다. 한가닥 희망으로 누군가가 너희들을 찾아주기를 바랬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그래야 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정말 미안하다. 한 번도 너희의 사진을 모아둔 빈소에 가질 못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가질 못했다. 나는 죄인이다. 너무 무기력했다. 정부가 무언가를 하겠거니 생각하며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정부가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을 늦게 알았다. 직무유기의 벌이 있다면 나부터 받겠다.

살아야 한다. 장사가 안된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상인들과도 살아야 했다. 대통령이 죄가 없다고 말하는 정치인들과도 살아야 했다. 죄를 모르는 대통령과도 함께 살아야 했다. 이제 근조 리본을 떼라는 어른들과 함께 숨쉬고 살아야 했다. 어묵을 먹으며 친구 먹었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젊은이들과도 살아야 했다. 너희 아비 어미들이 굶주리며 시위할 때 옆에서 피자 치킨 파티를 하는 이들과도 함께 살아야 했다.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 했냐고 말하는 어른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 놀러가서 참변을 당했으면서 그럴 거면 놀러가지 말지 그랬냐는 어른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제 자식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어른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들의 인두껍을 마주하며 살아야 한다. 어찌됐든 나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죄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너희는 떠나갔지만 산 사람들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변한 건 없다. 우리의 미래를 맡길 지도자 중에 어느 누구도 너희를 맞이하러 간 사람은 없었다. 가족들만이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돌아올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다. 먼 발치에서 너희가 돌아온다고 해서 나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시각 많은 이들이 돌아올 너희를 기다리고 있겠다. 시일이 많이 지났고 사회도 제대로 정신차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날만은 누가 누구를 삐치게 했네 하는 정치질 따위는 없었으면 했다. 다시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지도자를 뽑지 않았으면 했지만 변한 건 없나보다. 누구 하나 항구 언저리에서 컵라면을 불어 먹으며 너희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는 없었다. 우리는 이들을 지도자로 뽑고 다시 실패를 반복해야 한다. 아직도 선하다. 배는 반쯤 가라앉아 있었다.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주변에 모여든 어선들도 많았다. 구하겠다 생각했다. 그 때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더라면 비극의 깊이는 앝았겠다. 모두가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비극은 없었겠다. 모두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지만 결국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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