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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화 색 상생 통해 완성추구 철학 담겨… 새롭게 부활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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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0 20:57:41 수정 : 2017-03-20 20:5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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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20년간 한국채색화 재료연구 몰두 정종미 작가 고려불화가 아시아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독특한 양식뿐 아니라 어느 시대에도 뒤지지 않는 질과 격을 구비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불화는 채색화로서도 한국미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고려불화는 20년간 한국채색화 재료연구를 해 온 정종미(60·고려대 교수) 작가에게도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오는 31일까지 도쿄 네즈미술관에서 열리는 고려불화전을 보기 위해 그는 지난 주말을 일본에서 보냈다. 보고 또 보면서 고려불화의 내밀함에 입맞춤을 하기 위해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우리 채색화의 정체가 궁금해서 연구를 시작했어요. 미국에서 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대장정에 오르기 시작했지요.”

그는 요즘에 와서야 고려불화 앞에 서면 많은 이야기가 들린다고 했다.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안목이 생길수록 우리가 전통채색에 대해 무지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최근 고려불화전이 열리고 있는 일본 도쿄 네즈미술관을 찾은 정종미 작가. 그는 “고려불화야말로 한국채색화의 절정으로 한국미술의 새로운 힘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지 않으면 문화 한국의 미래도 요원하다는 절박감이 저를 채찍질해 왔습니다. 한국미술에 대한 상상의 보고가 거기에 있고, 그 판도라 상자를 열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오는 22일부터 28일까지 동덕아트갤러리에서 그동안의 연구 성과물들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연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사업으로 열리는 전시회는 채색기법 개발 연구전이라 할 수 있다. 네즈미술관의 고려불화전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현장에서 가늠해 볼 좋은 기회다.

“네즈미술관의 고려불화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줘요. 고려불화가 재료기법적인 면에서 매우 독특하다는 점입니다. 무기안료인 석채를 사용했지요. 특정의 색을 지닌 석채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아름다운 품위를 지니게 됩니다. 거의 파스텔톤이라고 할 수 있는 색채들은 천연의 안료가 지닌 색이기도 하지만 안료를 비단 위에서 전색제(용매)와 함께 능숙하게 다루어내는 고려시대 불화장들의 수준 높은 채화기술이 더해졌지요. 고려불화는 이전의 일반회화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배채기법도 사용했습니다. 비단의 뒷면에 채색하는 기법으로 앞면의 색칠과 만나 요철의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그림의 큰 공간감과 깊은 맛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고려불화의 미묘한 색채를 실물로 확인할 시간들은 파라다이스에 가깝다. 선명하면서 불투명한 석채는 비단을 통해 보이면서 투명하게 발색한다. 13세기의 불화가 그 이후의 것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지니고 있다. 고려인에게 색이란 바로 완전한 세계 즉 피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려불화는 극치의 색채를 통해 우리를 열반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숭례문 단청 복원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우리 손으로 만든 색채가 없다는 것은 수치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천연안료와 유사한 안료의 개발에 집중해 어느 정도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기법연구도 함께 병행한 결과물들이 전시를 통해 보일 것입니다.”

전시를 통해 그는 고려대 색채연구소의 개발안료가 회화적 안료로서의 기능을 하는지, 석채의 채색 매뉴얼까지 제시할 예정이다.

“전시가 우리 채색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채색화가 가지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확신해 볼 귀중한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일본 도쿄 네즈미술관에서 센오쿠하코칸 소장품인 ‘수월관음도’를 관람하고 있는 관람객들. 치밀한 형태묘사와 활달한 필선, 짜임새 있는 구성 등이 회화사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채색화의 재료와 기법을 통해 한국인의 색채관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서양의 7색 무지개가 아닌 5색 무지개가 우리의 색채관이다.

“고려불화에 나타나는 색채관은 색의 상생을 통해 완성을 추구하는 색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유전자는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색을 찾고 그 색이 힘을 가지려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DNA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색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한국미술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고려불화가 이젠 우리에겐 먼 얘기가 되었지만 내재된 색채관은 반드시 회복시켜야 할 과제라고 했다.

“자생적 색채철학으로 반드시 새롭게 부활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색채에 대한 정의가 없다면 자아발견도 어렵고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길도 요원해질 것입니다.”

그는 정체성 있는 색채관 수립은 결과적으로 엄청난 문화적 인프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바로 그것이 한국미술의 힘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고려불화로 돌아가 본다. 밑바탕은 붉은색을 칠하고 그 위에 녹청, 군청색을 칠했다. 예민한 감각으로 다양한 색조를 구사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 진한 색에서 연한 색으로 조율하는 방식도 그 한 예다. 색조차이로 수평선을 구현한 모습은 현대회화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고려불화는 고려후반기 13~14세기에 절정을 이룬다.

“다양한 색조의 구현을 위해 엄청난 심혈을 기울인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어떤 염료들이 쓰였는지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165점 정도가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17점, 유럽 6점, 일본 110점, 한국 30점 정도가 파악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4점을 빼고는 1980년대 이후 외국에서 사들인 것들입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 국내의 고려불화에 대한 가치인식이 부족했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가 우리 색에 천착하는 이유는 뭘까 다시금 질문을 하게 만든다. 작가로서 너무 재료에 매몰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그림이란 색의 재료를 가지고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연금술이라 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작가가 색의 재료를 모르면 연금술사는커녕 까막눈이나 다름없지요. 제가 맑고 깊은 색을 내기 위해 꽃과 나무껍질을 물에 삶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죠.”

그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채색 작업을 못하게 했다. 채색화는 ‘왜색’이라는 시각이 강해 수묵화만을 강요받았다. 하지만 고집스럽게 그는 채색화를 고수했다.

“고구려 벽화부터 고려 불화, 조선시대 인물화까지 모두 채색화인데 왜 이것을 못하게 하나 의문이 들더군요. 채색화를 제대로 공부하겠다고 나선 것이 미국행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다시 고려불화 앞에 섰다. 식물 안료 바탕색 위에 광물질 안료인 석채가 고귀한 색상을 뿜어내며 노닐고 있다. 거기에 금니의 화려함이 동참한 형국이다. 언뜻 보면 요염한 여인의 자태다. 그러면서도 신비하고 고귀하다. 성속을 아우르고 넘어서는 미학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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