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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미혼남 정관수술 증가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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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19 21:44:46 수정 : 2017-04-11 16: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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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관수술 했다.”

최근 동네친구 A가 술자리에서 폭탄선언을 했다.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결혼도 안 한 사람이 정관수술을 했다고 하니까. 이날 술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친구들도 20년 가까이 허물없이 지내온 사이답게 “야~이 미친 놈아, 그걸 왜 했어”, “이제 씨 없는 수박이냐” 등의 원색적인 반응이 빗발쳤다. 


남정훈 사회부 기자
사실 A는 20대 초반부터 입버릇처럼 “난 결혼해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고 말해왔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모님처럼 자기는 자기 아이에게 해줄 자신이 없다는 것.

A는 모자람 없이 컸다.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교를 다녔고 대학 졸업 후에는 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왔다. 결혼적령기가 된 요즘에도 그의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정관수술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동의가 궁금해졌다.

“여자친구는 동의한 거야?”라고 묻자 A는 “어. 여자친구는 하라고 하던데? 오히려 앞으로 피임 안 해도 돼서 편할 것 같다고 하더라”라고 답했다. “그럼 부모님도 아시냐?”라고 묻자 “미쳤냐. 아마 말했다간 내 호적 파일 걸? 부모님한테는 숨겨야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술자리가 파하고 귀갓길에 문득 궁금해졌다. A가 극히 이례적인 케이스일까. 아니면 A처럼 결혼 전부터 자식 없는 삶을 그리며 정관수술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은지. A가 수술을 받았다는 남성의원에 문의하자 병원 관계자는 “저희가 고객들을 기혼·미혼으로 나누어 집계하는 것은 아니라서 정확히 말씀드리긴 힘들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미혼남들의 정관수술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몇몇 비뇨기과 병원에 문의해도 대답은 비슷했다.

친구의 정관수술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낮아져가는 한국의 출산율이 떠오른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A의 정관수술은 저출산국가 한국의 ‘웃픈’(웃기지만 슬픈)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부는 2006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저출산 해결 정책을 발표해왔다. 출산과 양육은 물론 출산의 걸림돌로 지목되는 고용과 주택, 교육 정책까지 포함했다. 2006년부터 쏟아부은 예산만도 8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 수)은 1.17명으로 전년도의 1.24명보다 0.07명 줄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40만6300명으로 전년도 43만8400명보다 7.3%가 줄어 역대 최소치를 기록했다. 헛돈만 쓴 셈이다.

그동안 저출산 원인으로 아이를 직접 출산하는 여성과 관련된 이슈가 기사화됐다. ‘경단녀’(경력단절녀)라는 신조어도 생겼고, 여성들의 육아휴직이나 여성들의 학력, 노동 시간이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 등의 통계가 도출됐다. 출산과 육아, 양육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하는 것이니만큼 남성들에게도 좀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A는 술자리 막판쯤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5년 안에 풀면 복원율이 높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풀거야” 부디 A가 다시 ‘씨 있는 수박’으로 돌아올 수 있는 출산, 육아 대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남정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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