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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왕’ 율곡 ‘사람다운 사람’되기 위해 치열하게 사유

입력 : 2017-03-17 21:21:28 수정 : 2017-03-17 21: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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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 〈36〉 조선시대 선비들의 ‘어떤’공부
“공부 좀 열심히 해라. 그래야 남부럽지 않게 잘살 수 있지!”

어릴 적부터 이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 왔다. 지겹기도 할만 한데 이제 아이들에게 또 그 말을 반복하고 있다. 이 말에는 우리 삶의 성패가 공부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지금 시대에 여전히 사교육 열풍이 몰아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공부를 잘해서 성공하면 누릴 수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 자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대부분 원하는 만큼 양껏 소유하고 실컷 소비할 수 있는 그런 삶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행복한가. 오랜 질문이지만, 새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좋은 삶은 어떤 삶인가. 관성에 젖어 익숙하게 해온 ‘공부’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시험의 최강자 율곡 이이

공부를 잘했는지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공부의 최강자를 꼽자면 단연 율곡 이이(李珥)다. 그는 과거 시험에서 무려 아홉 번이나 장원을 차지했고, 특히 29세 때 치른 대과에서는 초시·복시·전시에서 모두 장원을 했다. 시험 하나만을 놓고 볼 때,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시험 ‘왕’이었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사유 또한 상당한 수준을 이루었다. 그가 스물세 살의 나이로 문과 별시 초시에서 장원을 차지했을 때, 답안으로 제출한 ‘천도책’(天道策)은 성리학의 우주자연관을 기반으로 논리 정연하게 전개한 글로 유명하다.

◆과거 시험이냐? 학문의 본질이냐?

조선시대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사서오경’의 경전을 포함한 유학 서적을 탐독해야 했다. 선비들 대다수가 과거 시험을 위해 경전을 암송하고 글을 짓는 데 온 정열을 쏟는가 하면, 일부 선비들은 시험과는 별개로 경전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치열하게 사유하였다. 율곡은 그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한 학자였다. 그런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일부 학자들 사이에서는 썩 자랑할 일은 아니었나 보다. 왜냐하면 절친했던 우계 성혼(成渾)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출세와 이득에만 관심을 쏟는다는 지적에 율곡이 집안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답변하는 대목이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중시하여 과거에 합격하는 것에만 마음을 쓴다’라고 한 것에 대해, 내가 어찌 그 책임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또한 제가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대대로 내려오는 생업이 없으므로 곤궁하여 가계를 꾸려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이 드신 어버이가 계시는데 맛있는 음식을 못 해드리니, 자식이 되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다만 과거 시험을 보는 길이 있어 나이 드신 어버이를 봉양하는 밑천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어버이를 위하여 몸을 굽힌 것입니다. 감히 가난 때문에 녹을 구하는 것을 공맹(孔孟)의 정맥(正脈)으로 삼으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답성호원’(1554년, 19세)

대과 장원은 언감생심! 소과에 합격하여 생원, 진사가 되는 것만으로도 양반 가문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대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아가는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시험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던 것이 조선시대 양반 사회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계는 생원시와 진사시의 초시에만 합격했을 뿐 과거 시험에 연연하지 않았고, 성리학의 의미를 탐구하는 공부에 집중하였다. 그런 우계의 성품으로 봤을 때, 과거 시험에 나아가려는 율곡의 모습은 썩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율곡은 우계의 진심 어린 염려에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형편을 이해하기를 바라며, 자신이 유학의 본령 공부를 잊은 것이 결코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과거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학문의 본령과 그 의미를 치밀하게 사유했던 두 사람은 조선 중기 학문의 큰 흐름을 형성한 기호학파의 원류가 되었다.

율곡이 성리학을 공부하는 초학자들을 위해 저술한 ‘격몽요결’. 이 책에서 율곡은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사태에 마땅하게 대응하는 것”이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라고 말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제공
◆율곡이 추구했던 공부의 목표

유학의 본령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율곡은 공부할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을까. 그는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을 여읜 후 3년간 무덤 곁을 지키다가 홀연히 금강산으로 떠났고, 일 년이 지나 산속 생활을 청산하고 세상에 나왔다. 이때 유학의 본령에 의지하겠다는 결의를 확고하게 다지고 ‘자경문’(自警文)을 지었다.

“먼저 뜻을 크게 가져 성인(聖人)으로 표준을 삼아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에게 미치지 못하면 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율곡은 자기 삶의 목표를 성인이 되는 것에 두었다. 성리학에서 성인은 뭇 사물을 쉼 없이 낳는 천지의 마음을 세상에 실현한 사람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인은 자신과 다른 사물의 존재 의미를 모두 실현하는 이상적 인간형이다. 사람들 누구나 배움, 즉 공부를 통해 성인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 성리학의 이념이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수양을 거쳐 세상에 나아가야 한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

율곡이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초학자들을 위해 저술한 책이 ‘격몽요결’(擊蒙要訣)이다. ‘무지한 사람을 깨우치는 핵심 비결’이라는 의미로 책의 제목을 정했다. 이 책은 조선 시대에 아동 교육을 위한 중요한 학습서로 사용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율곡이 생각했던 공부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그 공부는 세상과 동떨어진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소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사태에 마땅하게 대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일상의 삶을 넘어서는 기이하고 신기한 곳에 마음을 두거나 그런 효과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잡초로 뒤덮여 식견이 어두워진다. 책을 읽고 이치를 탐구하여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길을 밝힌 다음에야 올바른 경지에 오를 수 있고 실천에 중도(中)를 얻을 수 있다.” ―‘서문’(序)

성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율곡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출발점은 선현이 남긴 책을 읽고 그 의미를 세밀하게 탐구해서 반드시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과정을 차분히 겪어야만 자기 삶의 의미를 깨닫고 세상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는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해온 대부분의 공부가 눈에 띄는 성과를 위한 것이라면, 조선의 선비들이 했던 ‘어떤’ 공부는 일상의 삶에서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타인들과 올바른 관계를 성취하고 확장하려는 노력이었다. 합격과 성취라는 가시적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또 남다른 성과를 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재촉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상황이다. 봄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직장과 학교에서 또다시 새로운 목표와 성과를 이루는 데 몰두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공부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 율곡의 한마디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아련히 맴돈다. 마치 중요한 것을 깜빡 잊고 온 것처럼 말이다.

성광동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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