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인간에게 ‘먹는다는 것’은… 食과 生 탐험

입력 : 2017-03-19 13:24:33 수정 : 2017-03-19 13:24:3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어디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는가… 지구촌 나라들에서 만난 사람이야기 / 살기 위해 돼지고기 먹는 이슬람 난민 “먹는 것은 민족·종교 자부심보다 중요”
헨미 요 지음/박성민 옮김/메멘토
먹는 인간/헨미 요 지음/박성민 옮김/메멘토

“나는 내 혀와 위가 못마땅해졌다. 오랫동안 포식에 익숙해져 버릇이 없어진 데다 무엇을 먹었는지 곧 잊어버리기 일쑤며 매사에 아무 감동도 받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있는 내 혀와 위. 이 녀석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극한의 상황에서 괴롭히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본의 뉴스통신사인 교도통신에서 외신부 데스크로 일하던 헨미 요(邊見庸)는 은퇴를 앞두고 ‘먹는 것’에 대한 권태로움을 느꼈다. 세상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배고픔과 기아 문제로 시름하고 있기에, 그는 자신이 느끼는 권태로움을 사치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일본을 떠나보기로 결심했다. 여정은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음식을 씹고 쩝쩝거리는 풍경 속으로 헤치고 들어가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고 싶었다. 

저자 헨미 요(邊見庸)는 ‘먹는 것’에 대한 의미를 찾기 위해 1992년 여행을 떠났다. 사진은 저자가 방글라데시에서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는 모습.
메멘토 제공
소설 ‘자동기상장치로’로 일본의 유명 문학상인 아쿠타와상을 받은 저자 헨미 요는 1992년부터 2년간 여행을 떠났다. 그가 먹는 것에 대해 느낀 권태로움은 건조한 일상에 대한 염증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어떤 얼굴로 먹고 있을까. 또 얼마나 못 먹고 있을까. 하루하루 음식을 먹는 당연한 행위를 어떻게 의식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저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드라마를 책 ‘먹는 인간’으로 펴냈다.

그의 첫 여행지는 방글라데시였다. 방글라데시의 서부 로힝야족 난민촌은 주민과 난민 사이의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은 불교국가인 미얀마의 탄압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온 소수민족이다. 주민과 난민은 초반에는 같은 이슬람교도라는 동질감으로 원만하게 공존했다. 하지만 난민들이 구호단체로부터 지원받는 식자재에 주민들이 질투를 느끼면서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난민들로부터 식자재를 얻기 위해 비싼 값의 장작과 교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난민들도 식자재를 아끼기 시작했다. 이윽고 난민들이 산에 올라 직접 나무를 베는 일이 벌어지자 충돌하고 만다.

폴란드에서는 공산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인 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를 만난다. 야루젤스키는 오랜 군 생활 탓에 ‘음식을 재빨리 먹는 사람’이 됐다. 그에게 식사는 맛을 음미하는 것이 아닌, 허기를 달래는 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권력을 내려놓은 그는 마치 죄를 고백하듯이 와플의 맛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저자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찾았을 당시에는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가 분쟁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난민들의 무료급식소에서는 이슬람교도 여성이 얼굴빛도 변하지 않은 채 돼지고기를 씹어먹고 있었다. 이를 본 저자는 ‘먹는 것’이 민족이나 종교에 대한 자부심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필리핀, 태국, 베트남, 독일 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한국이었다. 일본인인 저자는 한국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간다. 당시는 위안부 할머니 3명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했던 때다. 저자는 할머니들을 만나 위안부로 겪은 고통을 직접 전해 듣는다.

한 할머니는 1944년 가을 고향인 대구를 떠나 상하이로 향하는 배를 탔다. 배 안에서 한 군인은 할머니에게 노래를 잘한다며 단팥소가 든 떡 두 개를 줬다. 그런데 할머니는 금지돼 있던 한국말을 무심코 해버렸고, 화가 난 군인은 떡을 군화로 짓밟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뱃멀미로 화장실에 간 사이 군인은 할머니를 범했다. 다른 할머니들도 군인들에게 차례로 당했다. 음식의 베풂과 범죄가 같은 배 안에서 같은 조직에 의해 벌어진 순간이었다. 당시 소녀였던 할머니들의 마음은 바닥에 짓이겨진 떡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버렸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나서도 떡은 여전히 짓이겨져 있다.

그런 나날이 이어졌지만, 한 할머니는 하시카와라는 특공대원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할머니에게 도시코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는 출격하기 전날 밤 찾아와서 할머니에게 고백했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증오스러운 일본의 특공대원인 하시카와는 세상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맛의 기억을 담은 개인사를 오랫동안 천천히 이야기하면 할수록 날카롭던 할머니들의 눈매가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난이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참함과 같아 보여도 하나하나 세세하게는 역시 자기 자신만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