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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선 못 본 까치 한국엔 너무 많아 / 까마귀는 일본 동요·동화 단골 소재
아침마다 창밖에서 나는 까치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우리 집은 아파트 18층이라 높아서 잘 들릴 리 없는데 ‘왜 소리가 이렇게 가깝게 들릴까’ 의아한 생각이 들어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니 동그란 위성방송 안테나에 까치 두 마리가 앉아있었다. 까치에게 그 자리가 마음에 든 것처럼 보였다.

다음 날 낮에 그 안테나를 다시 보니까 나뭇가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런 높은 아파트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 걸까. 신기하기도 하고 예뻐서 며칠 더 지켜보았다. 나뭇가지를 부리로 무는 모습은 못 봤지만 새가 어딘가에서 가져와 그곳에 놓으려고 했던 것은 확실했다. 그렇지만, 바람이 세게 불어 떨어져 버린 건지 나뭇가지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 역시 18층 아파트에 새집을 짓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다른 집에도 새집이 있을까 찾아보았더니 역시 있었다. 부엌 쪽에서 보이는 맞은편 아파트 10층 정도의 집에 우리 집과 같은 동그란 모양의 안테나가 있는데, 거기에 너무나 훌륭한 새집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렇게 큰 새집을 만드는 데 얼마나 왔다 갔다 하며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생각하니 자연의 모든 것에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까치는 길조로 불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새다. 일본에 있을 때 내가 사는 지역은 바다 근처라서 여러 종류의 새를 봤지만 까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까마귀를 자주 보았다. 까치도 까마귀와 같은 종류라서 까만 것은 같지만 꽤 분위기가 다르다. 까치는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 살짝살짝 보여 예쁘고 고귀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까마귀는 까치보다 몸집이 큰 데다 온몸이 새까맣고 소리도 요란해서 보기만 해도 무섭다. 특히 도시에 사는 까마귀는 쓰레기를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인지라 좋지 않은 이미지가 많다.

그런데 한국에서 까치가 노래나 전설에 많이 등장하는 것처럼, 일본의 동요나 동화에서는 까마귀가 많이 등장하고 오랜 세월을 사람과 가깝게 살고 있어서 그런지 친근하게 그려져 있다. 일본 동요 중에 “저녁노을 점점 스러지고 해가 지고/ 산사의 종이 울린다/ 손에 손 잡고 모두들 돌아가자/ 까마귀와 함께 집으로 가자…”라는 노래가 있다. 일본인이라면 모두 아는 향수가 있는 동요다. 어릴 때 하루 종일 들밭에서 놀다가 해질녘 붉은 저녁노을을 등지고 까마귀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집으로 가던 옛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일본에서 까마귀 울음소리는 ‘카아 카아’ 라고 하는데 한국말로 ‘가라 가라’ 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날개가 있는 새는 하늘을 날아갈 수 있어서 참 부럽다. 푸른 하늘에서 바람을 타는 기분을 상상해본다. 그런데 새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자유를 포기해서 스스로 열심히 새집을 만들고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바쁘게 하루를 지낸다. 집을 만드는 것도, 새끼들을 보살피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오랜 세월 변하지 않고 같은 방식이다. 그것에 비해 우리 인간의 사는 모습은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더 윤택해지려고 악착같이 일을 하는 모습이다. 그 결과 모든 면에서 편한 세상이 되었지만, 반면에 자신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새는 오늘도 자유로운 몸으로 새끼를 키우느라 바쁜 모양이다. 우리의 생활도 자유로워지는 만큼 자기 이익이나 욕망을 성취하는 것만으로 그 자유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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