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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같은 금지된 사랑… ‘밤의 해변에서 혼자’ 번민했다

입력 : 2017-03-14 21:05:38 수정 : 2017-03-14 21: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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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해변에서…’ 어떤 영화? / 여배우와 영화감독의 ‘불륜’ 그린 작품 / 여주인공의 관점으로 ‘사랑의 의미’ 탐색 / 홍감독의 세상에 대한 항변 대사로 표출
/ 자전적 이야기로 속내 솔직히 털어놔
“우리 두 사람은 ···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만남을 귀히 여기며 (서로) 믿고 있습니다. ··· 다가올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지난해 6월 불륜설이 나온 후 9개월 만에 국내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홍상수(57) 감독과 여배우 김민희(35)가 지난 13일 자신들의 ‘관계’에 대해 밝힌 일성이다.

2015년 2월 간통죄가 폐지됐지만, 유명인이 공개석상에서 불륜을 인정한 사례는 처음이다. 두 사람은 이날 시사회를 가진 홍 감독의 새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통해 그간의 심정과 입장, 생각, 그리고 사랑에 대한 철학 등을 충분히 이야기한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

영화는 독일 함부르크와 우리나라 강릉을 찾은 여배우 영희(김민희)가 지인들과 만나 사랑과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을 다룬다.

홍 감독 영화가 늘 그렇듯이 작품 역시 일상 속 소소한 대사들로 남녀 관계와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우연한 만남과 술자리 등 전개 방식이 전작들과 닮았지만, 여주인공의 관점으로 펼쳐간다는 점이 다르다. 카메라는 영희의 고민과 성찰을 따라간다.

유부남 영화감독(문성근)을 잊지 못하는 영희는 선배 지영(서영화)과 함부르크의 한 공원을 걷다가 작은 다리를 건너기 전 갑자기 엎드려 큰절을 올린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다짐하는 기도 같은 거야 ··· 내가 원하는 건 ··· 정말 나답게 사는 거”라고 말한다. 잔잔한 일상을 보여주는 도입부가 지나고 처음 메시지를 꺼내드는 대목이다.

공원 벤치에서 지영을 향한 대사도 의미를 품고 있다.

“솔직해야 되거든. ··· 사랑해. 그래도 (그가 나를) 힘들게 하면 어쩔 수 없지. 난 그렇게 다 걸고 하는 거 ··· 못해.”

영희는 해변 모래밭에 남자 얼굴을 그린다. 대머리다.

“난 이제 남자 외모 안 봐. ··· 아 그 사람 정말 보고 싶어. 나처럼 (그 사람도) 내 생각할까?”
홍상수 감독과 여배우 김민희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통해 불륜설에 휩싸인 심정과 입장, 세간의 시선, 그리고 세상에 대한 항변 등을 충분히 이야기한다.
강릉을 배경으로 찍은 2부에서 영화는 보다 직설적인 표현을 쓴다.

예술영화관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영희의 선배 천우(권해요)는 오래만에 만난 영희에게 불쑥 말을 건넨다.

“소문 들었어. 너 유부남이랑 바람피워서 잠수 타다가 외국 나갔다는 ··· 일은 다시 할 거야?”

불륜을 추궁하지만 그런 일로 배우 일을 그만두는 건 아니라고 충고한다.

카페 ‘봉봉방앗간’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영희가 혼자 나지막히 부르는 노래에는 그리움과 함께 슬쩍 실린 원망이 엿보이기도 한다.

‘바람 불어와 어두울 땐/ 당신 모습이 그리울 땐 ··· 아름다운 당신 생각/ 잘 사시는지 ···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맘으로 살게 됐는지 ···’

카페 안에서 선배 명수(정재영)와 마주 앉은 영희는 “남자들은 다 병신 같아요”라고 내뱉기도 한다.

명수는 도희(박예주)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며 부부처럼 사는 사이다. 하지만 영희에게 도희를 ‘친한 친구’라고 소개한다. 이때 도희가 큰 소리로 맞받아 친다. “우리가 친구예요?” 이어 “온종일 나만 일한다”며 명수에게 설겆이도 하고 커피 콩도 고르라고 닦달한다. 연인에서 어느새 잔소리하는 ‘마누라’로 변한 여인을 묘사한다. ‘연인’과 ‘아내’의 차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선배들과의 술자리다.

준희(송선미)는 영희에게 “안 보는 사이 매력적으로 달라졌다”며 “마음고생해서 뭔가 차오른 거 같다”고 말한다.

슬슬 취기가 오른 영희가 속내를 털어놓는다.

“독일에서는 평화롭게 지냈어요. ··· 실수를 한 적도 있죠.”

한국 남자와 독일 남자의 몸을 비교하기도 한다.

“저는 할 건 다해 본 것 같아요. 충분히 다해봤어요. 언제든 죽어도 돼요. 그냥 곱게 사그라들었으면 좋겠어요.”

일상 속 생각들을 디테일하게 옮기는 홍 감독 스타일을 볼 때, 실제 떠올렸던 번민들과 기분, 마음가짐을 영희의 대사에 담아 그대로 표출한 듯 보인다.

“진짜 사랑을 못하니깐, 사는 것에 집착하려 들죠. ··· 그런데 사랑을 못하잖아요. 사랑 받을 자격이 없으니깐. ··· 근데 사랑 사랑 노래는 해. 다 자격 없어요. 다 추한 짓하면서 그냥 좋다고 살고 있어요. 자격 없으면서.”

영희의 주정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을 망설임 없이 털어놓는다.

“벗어야 하리라/ 답답한 사랑도 벗어 던져야 하리라/··· 툭 벗어 던져야 하리라”  박종화 시인의 ‘감나무’를 인용하기도 한다. 

천우와 준희가 나누는 대사는 마치 세상을 향한 홍 감독의 항변같이 들린다.

“(영희와 불륜의) 그 감독은 어떻게 됐대?”(천우) “몰골이 ··· 폐인이 된 것 같더래요.”(준희) “왜 옆에서 난리들이야.”(천우) “일이 없어 심심한 거지 ··· 불륜이잖아.”(준희) “자기들은 잔인한 짓 다 하면서 왜들 가만두지 않냐 ··· 우리가 지켜주자.”(천우) “난 평생 친구해줄 거예요.”(준희)
영희는 꿈속에서 다시 만난 감독과 가진 술자리에서 말한다.

“제가 폭탄이죠. 폭탄. 파괴적인 면이 있죠. 주위 사람 다 망가뜨리고 ··· 그런데 감독님이 절 사랑해주셨잖아요. 그러니까 고맙죠.”

감독이 답한다. “네가 이쁘니까 그렇지. ··· 그런데 내가 정상이 아니다. (너랑 사귄) 그때부터. 영화는 만들지만 정상이 아닌 거야. 괴물이 되가는 것 같다. 매일같이 지긋지긋하게 후회해.”

“후회하지 마세요.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요?(영희)

“후회 돼. 그렇게 아픈데 ··· 누가 좋아서 후회하냐? ··· 그토록 후회하는 게 이젠 달콤하게 느껴져. 그래서 계속 후회하면서 그렇게 죽어가고 싶어.”

평단은 사랑에 짓물러 본 적 있는 사람들의 쓸쓸한 이야기이자, 홍 감독 의식의 흐름이 고스란히 반영된 영화라고 말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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