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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블랙리스트’ 윤이상의 재발견

입력 : 2017-03-14 21:03:36 수정 : 2017-03-14 21: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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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다채 “윤이상은 남한과 북한, 동양과 서양의 두 세계에 몸담아온 특이한 존재였다.”

최근 작곡가 윤이상(1917~1995·사진) 평전을 낸 박선욱씨의 말이다. 음악적으로 윤이상은 동양과 서양을 끌어안았다. 사상적으로는 남북한 사이에서 이념 논쟁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그의 음악은 유럽에서의 위상과 달리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그를 기리는 사업들마저 정부 검열과 대중의 무관심으로 중단되거나 취소되는 사태를 겪어야 했다. 다행히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재조명하는 자리가 다수 마련됐다.

◆동양과 서양 음악 기법·사상 융합시킨 현대음악가

1960년대부터 독일에 체류한 윤이상은 유럽에서 동서양의 음악 기법·사상을 융합시킨 현대음악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펼쳐 ‘제2빈악파’의 주역이 됐다. 가야금 연주의 농현 기법을 비브라토로 바꿔 표현하고, 민요와 판소리에서 끊어지지 않고 이어서 내는 기법을 첼로나 바이올린 연주에 사용했다. 이를 통해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라는 지위를 얻었다,

박씨는 윤이상에 대해 “뿌리와 과정이 다른 두 세계의 문화 사이에서 사유의 뜨락을 넓혀나갔고 빛깔과 무늬가 서로 다른 동양과 서양의 음악 사이에서 창조의 고뇌를 끌어안은 장인 기질의 소유자”라고 전한다. 윤이상은 이런 공로로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1988), 함부르크 자유예술원 공로상(1992) 등을 받았다. 독일 자어브뤼켄 방송은 1995년 윤이상을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인’에 선정했다.

동시에 윤이상은 국내에서 친북 인사로 낙인찍혀 있다. 그는 1967년 동베를린(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북한 방문이 빌미였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슈토크하우젠, 리게티, 지휘자 카라얀 등 세계적 음악가 200명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은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조사를 통해 정권에 의해 과장된 사건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재독 동포 오길남에 대한 탈북 권유 논란, 북한 정권의 윤이상 추대 등까지 겹쳐지며 그의 음악은 한국 땅에서 제대로 연주되기조차 쉽지 않았다. 윤이상평화재단은 최근 논란이 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매년 가을 그의 고향 경남 통영에서 열려온 ‘윤이상국제콩쿠르’가 좌초 위기에 놓일 뻔했다.

탁무권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은 “윤이상은 이념을 뛰어넘은 민족주의자”라며 “그는 일제강점기 때 무장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 직후 일본에서 돌아온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만드는 등 사회를 외면하지 않고 자기 몸을 던져 시대와 호흡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통영국제음악당.

◆통영과 베를린서 윤이상 음악 울린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이상을 새로이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에서 일고 있다. 오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경남 통영국제음악당과 통영시 일원에서 열리는 ‘2017 통영국제음악제’는 그의 음악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개막 공연에서는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테트가 윤이상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첼로 협주곡을 연주한다. 빈 필하모닉 앙상블은 윤이상의 ‘밤이여 나뉘어라’를 연주한다. 음악학자 윤신향에 따르면 이 곡은 작곡가가 경험한 무속 의식이 음향적 환상으로 표현된 것이다.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최수열의 지휘로 윤이상 ‘8중주’를 연주한다. 오보이스트 잉고 고리츠키 등 윤이상 작품에 조예 있는 독일 연주자들로 짜인 ‘윤이상 솔로이스츠 베를린’은 윤이상의 ‘낙양(洛陽)’ 등을 들려준다. 세계 최정상의 현대음악 현악사중주단 아르디티 콰르텟은 윤이상의 현악사중주 3번과 4번을 무대에 올린다. 윤이상의 오페라 ‘류퉁의 꿈’도 감상할 수 있다. 서울시향이 맡는 폐막 공연에서는 윤이상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연주한다.
서울시향.

이밖에도 서울시향은 24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여는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 - 실내악 콘서트’를 통해 윤이상을 추모한다. 연주곡은 ‘협주적 단장(短章)’이다. 윤이상 곡 연주에 애착을 보여온 첼리스트 고봉인은 오는 9월 14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에서 윤이상 스페셜 무대를 연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오는 9월 독일의 손꼽히는 음악축제인 무지크페스트베를린에 참가한다. 윤이상 탄생일인 9월 17일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윤이상 교향곡 ‘예악’ ‘무악’ 등을 공연한다. 이 축제에 아시아 오케스트라가 초청되기는 경기필이 처음이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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