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작년 10월에 발표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632달러였다. 1만달러를 한참 지나 3만달러 턱밑까지 치고 올라갔으니 해방둥이 세대가 한결같이 품었을 소망이 이뤄졌다면 지금쯤은 힘들었던 과거를 추억의 책장 넘기듯 하며 윤택하고 안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 상당수는 질곡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불행의 덫에 갇혀 있다. 2015년 노인 빈곤율은 63.3%이고, 노인 자살률은 10만명당 58.6명으로 전체 인구 자살률(10만명당 26.5명)의 2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나 된다.
김기홍 논설위원 |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애국심은 믿듯이 태극기 어른들의 애국충정을 의심하진 않는다. 촛불세력이 미덥지 못하고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노심초사가 ‘아스팔트 길을 피와 눈물로 덮어버리는 시가전’ 운운하는 분노로 변질된다면 애국이라고 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는 날까지 새출발을 준비하는 국민들 가슴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승복’을 말하지 않았고 지지자들에게 보낸 차디찬 미소와 눈물은 집단 최면을 거는 주술 같았다. 주술에 갇힌 몇몇 친박들은 헌재 탄핵 결정 무효를 주장하고 헌재 해산·탄핵심판 재심을 요구하고 해산과 새로운 국회를 위한 신당 창당을 말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것이고 헌법 질서를 흔드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박근혜 탄핵’을 주장하고 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것은 기울어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함이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민의 이름으로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중대 범법자를 심판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의 숭고한 가치를 지켰다. 헌재 탄핵심판 결정문을 통해서는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임을 확인했다. 대한민국을 통째로 ‘빨갱이들’에게 넘겨주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날의 어둠을 걷어내고 화해와 포용으로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려 한다. 대통령 파면은 박근혜만 물러나게 한 것이 아니고 지난 수십년간 한국을 지배한 구질서를 바꾸려는 대장정의 시작이다. 그 길은 지난 50여년 산업화 민주화 시대보다 더 험난한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다. ‘한강의 기적’을 성취한 어른들의 지혜와 경륜이 합쳐지지 않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젊은이들에 대한 불신을 털고 믿어줄 수는 없나. 어제의 분열을 끝내고 내일을 개척할 수 있도록 흔쾌히 지지와 박수를 보내줄 수는 없나. 이제 미래는 미래세대 손에 맡겨달라.
김기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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