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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한국영화의 힘은 문화산업적 힘의 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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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7 22:05:29 수정 : 2017-04-11 14: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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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작품이 빛을 발하는 건
일상을 담는 특별한 능력 덕분
김민희와의 스캔들보다는
예술파트너로의 행보 더 기대
한국영화가 유럽의 3대 영화제에서 다시 한 번 존재를 각인시켰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제에서 가장 돋보이는 상은 뭐니 뭐니 해도 여우주연상이다. 여우주연상이 그렇게 대접을 받는 것은 영화예술은 그 근본에서 사물에 대한 관음증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는 강수연이 ‘씨받이’(1987년 베니스영화제)로, 전도연이 ‘밀양’(2007년 칸영화제)으로, 그리고 이번에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우주연상을 탔다.

영화는 역사나 정치 이야기 등 스케일이 큰 소재와 주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랑과 섹스 등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현상을 통해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정치와 현실에 접근하고 풍자하는 데서 진면목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과대망상증의 삶을 자질구레한 일상의 들러리로 삼는 버릇이 있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 소장·문화평론가
영화만큼 이미지 그 자체로 승부를 거는 예술은 없다. 영화의 이미지는 사진예술의 특성으로 인해 이미지가 바로 사물이 되는 환상(착각)을 일으킨다. 또 인간의 삶이 사랑의 성(性)과 권력의 성(姓)과 성스러움의 성(聖)이 순환하는 것이며, 서로의 변형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예술 장르도 없다. 한국영화의 성공은 이제 일상의 의미를 특별한 것으로 표현하는 영화적 기술과 스토리 전개의 탄탄함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즉 리얼리티가 픽션이고, 픽션이 리얼리티다.

영화의 네거티브 필름은 어둠에서 인간의 호기심을 발동하고, 그 호기심은 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은 생식 욕구를 사랑과 섹스와 사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꾼 생물종이다. 욕망의 철학자 라캉은 욕망이 끝이 없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가장 과학을 닮았다. 그 영화의 블랙홀에 여주인공이 있는 것이다.

프랑스나 유럽에서는 영화를 모르면 철학자나 인문학자가 될 수 없다. 롤랑바르트나 들뢰즈 등은 어떤 점에서는 영화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발자크, 플로베르, 에밀졸라 등에 의해 근대 사실주의 문학을 견인한 프랑스는 소설에 이어 영화에서 현대를 말하고 있다. 롤랑바르트는 영화 이해를 위해 ‘의미작용의 기호학’을 창안했고, 들뢰즈는 ‘뇌는 스크린이다’는 주장과 함께 “영화는 뇌-눈-신체기계와 카메라-스크린기계의 조우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소설의 등장이 인간의 삶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면, 현대대중예술의 총아인 영화는 소설의 문자적 한계를 벗어나서 사진의 이미지로 여성의 몸 자체를 가장 고귀한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들어갔다. 여성은 신체적이고 직감적이고 즉물적이다. 자신의 관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사는 정치적 남성들보다는 한결 현실적인 게 여성이다.

미국 할리우드와도 경쟁할 줄 아는 한국영화는 현실과의 소통에서 점차 성공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적 픽션이 현실을 앞서가기도 하고, 현실이 픽션을 낳기도 한다. 작가주의 감독 계열에 속하는 홍상수 감독은 김기덕 감독과 함께 세계적 관심을 끌고 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이라는 이상한 일탈의 제목으로 데뷔한 홍 감독은 지금까지 장편영화 19편을 만들어냄으로써 영화장인으로서의 면목을 보여주었다. 다음 작품을 무엇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스타 감독이 되었다. 영화도 K팝과 함께 한류의 든든한 견인차가 되고 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김민희와의 열애설 속에서 태어난 작품이기에 더욱 궁금증을 일으키고, 영화의 스토리가 유부남 감독을 사랑하는 여배우의 사랑과 고독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리얼리티가 절실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홍 감독은 영화를 싸게(편당 1억원 정도) 만드는 작가로도 소문이 나 있다. 제작비가 수백억원을 넘나드는 블록버스트급 영화가 아닌데도 그의 작품이 빛을 발하는 것은 일상에서 작품을 건져 올리는 특유의 힘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것을 놀이처럼 대한다고 한다. 놀이처럼 대하기 때문에 도리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힘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강원도의 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유의 언덕’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등은 제목달기부터 톡 쏘는 맛과 함께 시적 에스프리를 발산하고 있다. 그는 최근 스캔들에 휘말리면서도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예술보다는 도덕을 앞세우는 우리 사회의 위선적 도덕주의와 프라이버시 침해가 전문성과 예술성을 사그라지게 하는 폭력으로 작용하는 것을 마다했다.

예술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탈과 자유의 존재이다. 그들의 일탈이 없으면 예술은 처음부터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김민희라는 여배우는 홍 감독에 의해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김민희의 연기가 적지 않는 역할을 했다”(미국 버라이어티지), “김민희는 관객을 깨어있게 했다”(할리우드 리포터) 등의 평을 보면 새로운 스타일로 한국영화를 짊어질 재목으로 성장할 것이 기대된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년)에서 감독과 여주인공으로 만난 이들의 열애설보다는 예술 파트너로서의 행보가 기대된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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