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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현장+] 불법 대출 전단지 왜 단속이 안되나 봤더니…처벌은 고작 3만원 벌금

입력 : 2017-01-19 12:10:00 수정 : 2017-01-19 11:2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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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불법 대부 관련 명함 전단지.
“가게 문을 열 때마다 짜증납니다. 이건 뭐 치워도 쌓이고, 오토바이를 타고 광고 명함을 던져서 도저히 잡을 수도 없어요. 단속 요청해도 그때뿐이고 당해보면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오토바이가 옆으로 쌩하고 지나가면 무서워요. 그리고 명함의 날카로운 모서리가 몸에 맞으면 불쾌하고 짜증나요.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알아서 피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서울 시내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요리조리 빠르게 내달리는 오토바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검은 마스크와 헬멧으로 무장한 채 오토바이에 올라탄 이는 운전하면서도 쉴 새 없이 명함 크기의 대출 전단을 무차별적으로 도로 옆 상가와 인도 등을 향해 던진다. 

이렇게 대량 살포된 전단은 환경미화원의 한숨을 키울 뿐만 아니라 뿌려지는 과정에서 행인 등이 다칠 위험도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불법 대부 관련 명함 전단지.
명함 전단은 대부분 대부업체를 광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영세한 자영업자와 가난한 청년을 겨냥한 불법 광고이다. 이들 계층은 낮은 신용등급 탓에 금융기관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하는 만큼 불법 대출의 유혹에 쉽게 빠지고, 향후 살인적인 고금리에 시달리는 악순환을 겪는다. 

소규모 자영업자가 밀집한 데다 대학생이 주로 거주하는 대학교 주변에 대부업 전단지가 날마다 쌓이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들 지역의 소규모 음식점과 원룸촌 앞엔 대부업 전단지가 수두룩하다. 실제로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숙명여대 주변 거리를 걸어보니 음식점 전단지와 각종 대부업체에서 뿌린 광고명함 수십여 장들이 발길에 차였다. 수십장의 광고 명함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 그대로 방치된 모습은 이곳에서는 일상이라는 게 지역 주민의 전언이다. 아울러 소자본으로 테이크아웃 커피나 도시락, 삼각김밥, 컵밥, 돈가스, 떡볶이 등을 파는 가게를 창업한 자영업자들이 이 같은 대출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고도 덧붙였다.

숙명여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씨(24)는 “가게 앞을 청소해도 다음날이면 다시 또 불법 전단들이 널리다 보니 매번 짜증이 난다”며 “여기는 대학가 주변이라 학생들이 쉽게 유혹에 빠진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특히, 대출광고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주민 강씨(35)도“깨끗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부터 고쳐야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렇게 방치된 불법 전단들은 행인들이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쓰레기 더미가 되고, 도시 미관을 크게 해치고 있다. 길 모퉁이나 길가 쓰레기통 주변에는 어김없이 불법 대출전단지가 수북이 쌓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불법 대출의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공무원 준비 때문에 지방에서 올라왔습니다. 힘든 부모님에게 손 벌리기 싫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200만원 일수대출을 했더니 어느새 400만원으로 불어났습니다. 부모님께 말도 못하고 정말 미칠 지경입니다."

불법 대부의 유혹에 빠진 피해자의 하소연이다.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불법 대부 관련 명함 전단지.
불법 대출 전단을 살펴보면 노란 또는 빨간 글씨로 '어려운 경제고민...○○ 대출', '사장님의 급한불을 꺼드리겠습니다', '○○천사 일수', '초간편당일대출' 등 경제적 취약계층을 유혹하는 문구로 가득했다. 

100만원 단위로 하루 상환금액이 구체적으로 표기된 전단도 있다. 한 대부업체는 200일 기준으로 100 원 대출 시 하루 동안 상환금액이 5300원, 200만원은 1만600원, 300만원은 1만5900원, 500만 원은 2만6500원, 1000만원은 5만3000원으로 나와 있다.

상환금이 소액이라 피부로 느껴지기엔 다소 낮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1000만원을 빌렸다면 200일 동안 상환하는 금액이 1060만원에 달하는 고금리를 감내해야 한다.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 한 거리에 떨어져 있는 불법 대부관련 명함 전단지.
다른 대부업체들의 명함 광고는 '자영업자 100% 대출', '신용불량자도 대출 가능' 등의 문구로 앞세워 영세 자영업자는 물론이고 기존 금융대출을 갚지 못한 이에게도 돈을 빌려주겠다고 유혹했다. 

연령대로 보면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금전이 필요한 20대가 이들 불법 대부업체의 주요 고객이다. 이들 젊은층은 케이블 방송이나 SNS, 텔레마케팅 등을 통해 대출 광고에 익숙해져 고금리 대부의 위험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하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상황이 이렇지만 불법 전단지에 대한 단속을 맡는 구청은 속수무책이다. 한 관계자는 “직원들을 동원해 수시로 정비를 하고 있다”며 “하지만 오토바이로 전단지를 던져 단속이 힘들다. 과태료를 부과해도 연체하기 일쑤고, 경찰에 넘겨도 경범죄로 분류돼 벌금이 3만원뿐이라 단속에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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