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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내 안의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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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23 01:02:41 수정 : 2016-12-23 01: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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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 삿대질하면서
자기 잇속 챙기려는 청탁 여전
나와 다른 생각에 적대감 표출
남의 자유 존중하는 관용 절실
어느 검사장의 전언이다. “송년 모임에 한 친구가 늦게 나왔어요. 촛불집회에 참가하느라 늦었다는 거예요. ‘야, 그 나이에도 촛불집회에 나가냐’고 했더니 ‘박근혜, 나쁘잖아’ 하더군요.” 더 말하면 논쟁이 될 것 같아 입을 닫았더니 그다음이 가관이었다고 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그 친구는 검사장에게 대뜸 “FRP(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를 납품해야 하는데 ○○그룹에 아는 사람 있냐”고 물었다.

검사장은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국정농단의 시발이 이런 청탁과 압력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동원해 청탁하고 이권을 챙긴 구태가 최순실 게이트의 뿌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것을 바로잡겠다고 촛불까지 든 사람이 대놓고 이권 청탁을 하다니! 마치 제 눈에 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에 티끌만 보는 격이다. 어디 그 중년 사업가뿐이겠는가.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청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 병폐다. 어느 대기업 간부는 자신의 주 업무가 국회의원들의 민원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한다. 취업이나 납품 따위의 각종 청탁이 들어오면 해당 부서와 협의해 어떤 식으로 처리할지 협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방법만 더 은밀해졌을 뿐이다. 정치인들만 나무랄 처지도 못 된다. 그들에게 청탁한 사람은 우리 같은 평범한 민초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인들도 유권자들의 청탁으로 몸살을 앓을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피해자다. 그것이 우리의 의식 수준이고 국제 사회에서 청렴도가 바닥을 기는 이유다. 남의 탐욕만 손가락질하지 말고 ‘내 안의 최순실’을 봐야 한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이중 잣대로는 곤란하다. 내 안에 있는 탐욕을 뽑아내는 자기 정화의 노력이 중요하다. 이런 노력은 제쳐둔 채 “박근혜 퇴진”만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대통령이 물러나고 최순실을 감옥에 가두어도 권력형 부패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패의 뿌리가 내 안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주장조차 마음 놓고 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그럼, 대통령의 잘못을 그냥 두자는 거냐”고 눈을 부라리는 사람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법에 따라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이 진행되는 방식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주장을 펴면 댓글이나 전화로 무차별 공격하는 ‘댓글 테러’, ‘전화 테러’가 기승을 부린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들이 그것을 짓밟는 반민주적 범죄를 밥 먹듯 한다. 나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집단으로 유린하는 행위는 자유가 아니라 저급한 인민재판일 뿐이다.

중국에서 근대 문학과 인권 운동을 이끈 후스는 자유보다 용인(容忍)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후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용인이 자유의 뿌리이기 때문이죠. 용인이 없으면 자유는 아예 말할 수도 없어요.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최소한 상호 용인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민주 가치의 핵심을 꿰뚫는 어록이다.

후스의 정신은 오늘 대한민국에 절실한 덕목이다. 우리 사회에 유독 대립과 갈등이 심한 것은 아마 관용이 부족한 탓이 아닐까. 최근 국정농단 사태에서 빚어지는 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으로 간주해 뭇매를 가하는 일은 반헌법적 행동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자유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짓이다. 대통령을 불통이라고 욕하면서 스스로 불통을 저질러선 안 된다. 남의 불통만 탓하지 말고 ‘내 안의 박근혜’도 봐야 한다.

개혁과 혁명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진정한 개혁은 자기에게서 출발해야 한다.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시작은 수신(修身)이라는 공자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올해 병신년이 ‘내 밖의 최순실’을 추방하는 한 해였다면 다가오는 정유년은 ‘내 안의 최순실’을 몰아내는 새해가 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을 한 걸음 전진하게 만드는 ‘진짜 개혁’이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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