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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친박의 롤모델, 벌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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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16 01:14:30 수정 : 2016-12-16 01: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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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 없는 현실 안중에 없이 ‘당권 사수’ 외치는 여당 주류 / 국가와 보수 복원 위해서라도 꼴사나운 일벌 행세 중단해야 박근혜 대통령의 롤모델은 엘리자베스 1세라고 한다. 나라 살릴 여장부가 되기를 꿈꿨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국회 탄핵소추안 의결까지 부른 여러 허물로 미루어 대다수 국민이 군말 없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의 근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진짜 롤모델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여왕벌이다.

연일 막말 잔치를 벌이던 새누리당은 어제 비교적 평온했다. 물론 대소사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친박 이정현 대표를 축으로 하는 최고위원회는 ‘21일 총사퇴’를 공표했다. 원내대표 경선 ‘D-1’에 걸맞게 선거운동도 펼쳐졌다. 친박 정우택 의원은 ‘화합’을, 비박(비박근혜) 나경원 의원은 ‘변화’를 내세워 지지를 호소했다. 일각에선 합의추대론 등도 대두됐고.

이승현 논설위원
그 정도였다. 다들 숨을 돌린 감마저 없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박 대통령과 더불어 향후 거취가 주목되는 친박 내심이 평온했을 것으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의 속내는 아마도 친박 이장우 최고위원의 12일 발언에 담겨 있을 공산이 많다. 그는 친박 용퇴를 요구하는 비박 김무성, 유승민 의원을 향해 “부모형제를 내친 패륜을 저지른 사람들이 집 대들보까지 뽑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배반과 배신의 아이콘’ 등의 낙인도 찍었다.

어찌 봐야 하나. 결사항전의 각오가 대단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물론 계파 공방 중에 나온 발언이어서 어조가 격해진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살피는 기색조차 없는 것은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어찌 저리도 맹목적일 수 있을까. 친박을 가늠할 다른 방도는 없다. 여왕벌을 떠받드는 벌떼로 볼밖에. 그렇다. 친박의 롤모델은 일벌이다. 그렇게 간주해야 남다른 집단정서에 대한 이해가 비로소 가능해진다.

벌은 소중한 생명체다. 벌 연구 석학인 마크 윈스턴은 ‘사라진 벌들의 경고’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속씨식물 35만2000종 가운데 22만9000종이 수분하기 위해 벌을 꼭 필요로 하거나 벌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다. 벌은 노동과 근면의 본보기다. 공동체 활동 측면에서도 모범적이다. 박 대통령과 친박만의 롤모델이 아니다. 인류의 롤모델이다. 옛 교황 비오 7세는 1948년 강연에서 “사람들이 벌의 교훈을 들을 수 있고 들으려고만 한다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친박도 뭔가 배운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벌떼 근성을 태생적으로 체화하고 있거나. 집단 생존을 위해 자못 절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에 당권 총력전에서 이긴다면 법적 차원의 탄핵 저지라는 2차 목적지를 향해 붕붕 날아갈지도 모른다. 옆에서 아무리 부질없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딱하게도, 결정적 문제가 하나 있다. 박 대통령은 5000만 국민의 여왕벌이 아니라는 점이다. 설혹 여왕벌이라 하더라도 친박의 여왕벌일 뿐이다. 얼마 전까진 최태민 일가의 여왕벌 혹은 일벌이었을 테고. 여왕벌은 알을 끊임없이 낳고 페로몬을 분비해 일벌을 지배한다. 그렇게 사회 존속과 건강을 지킨다. 여왕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는 기능 정지 상태가 되면 자연계의 일벌은 늦어도 30분 안에 다 감지한다. 대혼란의 시작이다. 벌떼는 서둘러 새 여왕벌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남는 것은 공멸뿐이니까.

대한민국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자마자 즉각 괴변을 감지했다. 국가적으로 분주하게, 또 다소 혼란스럽게 새 리더십도 찾고 있다. 불가피한 흐름이다. 세상은 이미 바뀐 것이다. 그런데도 어제의 세상에 남은 여왕벌은 ‘피눈물’을, 일벌은 ‘배반과 배신’을 말한다. 이 얼마나 허망하고 엽기적인가.

정치 현실을 직시하자. 박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1세처럼 슬기롭게 나라를 이끌지 못했다. 최순실씨 같은 무자격 ‘시녀벌’에게 휘둘린 허물도 엄중하다. 책임을 져야 한다. 친박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당권 사수나 외치면 어떻게 하나. 이러니 국민은 더 열불이 나는 것이다. 보수 공멸의 위험지수도 높아지고. 친박은 꼴사나운 일벌 행세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기껏해야 ‘눈먼 벌’ 소리나 들을 테니까. 아니면 ‘미친 벌’ 소리를 듣거나.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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