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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거북이는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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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2 01:10:05 수정 : 2016-12-02 01: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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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조사에 이어지는 청문회
국내 기업들로선 산 넘어 산
국회는 근육자랑 일삼는 대신
권력 노략질 예방할 길 찾아야
옛 속담에 ‘죄지은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고 했던가. 비선 실세 최순실씨를 축으로 하는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려 도매금으로 동네북이 된 집단이 있다. 국내 대기업들이다. 날벼락을 맞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등에 돈을 갈취당한 것이 죄라면 죄다. 9개 그룹 총수는 다음주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서야 한다. 재계는 온통 초비상이다. 보호무역주의 물결에 대응할 글로벌 생존 전략조차 안중에 없다.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는 블랙 코미디다.

기업 총수들은 국회 소환에 앞서 이미 대부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산 너머 산이다. 이번 청문회로 끝날 일도 아니다. 어제 특별검사 임명장을 받은 박영수 특검의 수사가 본격화하면 또 줄줄이 불려나갈 공산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을 겨누는 옥죄기의 성패는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입증에 달려 있다. 그래서 기업 또한 그물에 든 고기 신세가 됐다. 인정사정 봐줄 까닭이 없다.


이승현 논설위원
해당 기업들은 내심 황당할 것이다. 청와대에 물어뜯기고 나니 왜 물어뜯겼느냐고 검찰, 국회가 다시 물어뜯는 꼴이니까. 흡혈귀가 왜 이리 많은가. 물론 기업에도 자책사유가 없지 않다. 그래서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구심 또한 없을 수 없는 국면이다. 청와대 권력 앞에 무력하게 마련인 기업들을 마구잡이로 윽박지르는 작금의 기류가 과연 정당한가 하는 의구심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라도 곱씹으면서 국정농단 의혹에 한 두름으로 엮인 기업 처리 문제를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솝 우화를 원전으로 하는 ‘토끼와 거북이’에서 거북은 성실의 상징, 토끼는 나태의 상징이다. 함께 달리기 시합을 하던 도중 토끼는 낮잠을 자고, 거북은 엉금엉금 기어가서 결국 역전승을 하니까. 이렇게만 보면 별달리 곱씹거나 말거나 할 게 없다. ‘노력 불패’ 등의 교훈을 얻었다 치고 접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최승필 교수는 자못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법의 지도’에서 “거북이는 왜 시합에 응했나”라고 묻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좀 이상하다. 거북이는 왜 헤엄치기가 아니라 달리기를 택했을까.

최 교수는 ‘갑을관계’에서 답을 찾는다. “토끼가 주요한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로 봐야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달리기 시합은 형식상으론 두 당사자의 자유의사 계약에 의해 성사됐다. 그렇더라도 속내는 딴판이다. 거북은 달리기를 택할 수밖에 없었고 자기가 잘하는 수영은 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우화의 역전극은 우화에서나 가능한 결과다. 현실에서라면 거북에겐 기회가 없다. 토끼가 완전히 미치지 않은 한 중요한 시합 도중 낮잠을 잘 까닭이 없으니까.

작금의 현실을 보자. 면세점 문제로 코가 꿰인 SK와 롯데그룹만 봐도 좋겠다. 두 기업은 토끼인가 거북인가. 거북일 수밖에 없다. 두 기업은 지난해 11월 2차 면세점 특허 경쟁에서 탈락해 사업권을 속절없이 잃었고 청와대의 총수 호출에도 순순히 응했다. 왜? 권력의 횡포 앞에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 다른 기업들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기업들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 본다면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러니 의구심이 들밖에. 일방적 게임을 강요당한 거북에게 법조문을 들이대며 못살게 굴어야 하는가 말이다.

국회 청문회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토끼를 잡겠다고 거북에게 무분별하게 날벼락을 날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국회가 힘을 뽐낼 대상은 따로 있다. 기업 갈취를 구조화하는 후진적 규제 법제를 대대적으로 손봐야 한다. 국제적 조소를 낳는 면세점 특허부터 철폐 혹은 개선하고, 한 해 20조원 이상 기업 출혈을 빚는 준조세를 근절하는 묘방도 강구해야 한다. 차후의 권력 노략질을 예방할 길이 거기에 있다. 경제 악화·청년 실업 등에 대응하는 첩경도 거기에 있고. 그러는 대신 TV 생중계되는 청문회에서 근육자랑이나 일삼는 것은 어리석다. 5000만 국민 안목을 우습게 보지 말아야 한다. 유권자들은 혀를 찰 것이다. “거북이는 대체 어쩌란 말이냐”라면서.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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