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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가보지 않은 길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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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1-03 21:32:32 수정 : 2016-11-03 21: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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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민생 표류하는
대혼돈의 장기화 막으려면
청와대도, 야당도 정략 접고
국가적 위기 관리 우선해야
길은 크게 둘로 나뉜다. 가본 길과 가보지 않은 길이다. 후자에 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썼다. 그 길은 과거에 있고, 아쉬움으로 얼룩지는 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사내 강연에서 “제가 먼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겠다”고 했다. 그 길은 미래로 향한다. 열정과 투지를 일깨우는 도전의 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미래로 열린 길이다. 박완서의 길이 아니라 최태원의 길이다. 그러나 열정과 투지 대신 불안과 우려만 극대화한다. 1987년 헌정체제 수립 이후 본 적 없는 낯선 길이다. 전혀 반갑지 않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중심제 국가다. 국가와 민생을 돌보는 국정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그런데 청와대의 리더십이 완전히 망가졌다. 국정농단 파문이 실로 파괴적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87년 체제의 30년은 순조롭지 않았다. 유종의 미를 거두면서 5년 임기를 마친 전직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다. 탄핵 사태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더라도 1년4개월 임기를 남기고 이번처럼 국정동력이 거덜 난 전례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여야 정치력은 볼품없고 공직사회의 역량과 소명의식도 의심스럽다. 국내외 정세는 평온한가. 국정 리더십 없이 달려 가도 무방한가. 천만에. 사면초가 꼴이다. 이토록 암담하고 캄캄할 수가 없다.

정국은 연일 혼란의 극을 달린다. 청와대의 한광옥 신임 비서실장 임명 발표가 나온 어제는 더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세운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에 대한 왈가왈부가 커진 까닭이다. 하기야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는 극언까지 나온 마당이니 어제 난기류는 한낱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 그 초입이 이렇다면 어떤 각오를 하고 계속 가야 하는 것일까. 계속 갈 수는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청와대부터 정신 차려야 한다. 박 대통령은 신뢰를 잃었다. 원칙도 무너졌다. 뭐가 남았나.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좌우 진영을 떠나 다들 “뒤로 물러나라”고 입을 모으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신 혹은 오해의 여지를 남기는 불통 행보가 계속된다. 따가운 질문이 쏟아질밖에. ‘사실상 2선 후퇴’는 구체적으로 뭔 뜻인가. 왜 법적 권한을 다 내려놓겠다고 명쾌하게 선언하지 않나. 대통령이 재기의 기회를 엿보는 것처럼 비치는 한 국정 정상화는 요원하기만한 현실이 보이지도 않는가.

청와대만이 아니다. 어제 김 후보자를 ‘불통 총리’(더불어민주당), ‘무대 위 광대’(국민의당)로 낙인찍은 야권도 달라져야 한다. 이미 입에 담은 ‘대통령 하야’가 민의에 부합하고 사리에 맞는다고 본다면 탄핵 절차를 밟을 일이다. 차라리 그쪽이 깨끗한 해결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내가 다르다면 일단 국정 수습에 협력해야 한다. 현재는 이도 저도 아니다. 정략적 공세를 퍼붓다 말을 바꾸는 무책임 행태나 일삼는다. ‘국면전환용’이란 화살도 마구잡이로 쏴 대고. 뭔가. 야권의 제일 큰 걱정은 국면전환이란 것인가. 국가와 민생이 위태롭게 표류하는 대혼돈의 국면을 내년 12월 대선 때까지 계속 이어가자는 것인가. 야권마저 이러니 국민 속은 더 타들어가는 것이다.

박완서가 못 가본 길은 학문의 길이다. 왜 못 갔을까. 6·25전쟁 때문이다. 스스로 다른 길을 택하고도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읊은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와는 달랐다. 국가는 때로 꿈을 산산조각 낸다. 한심한 국가일수록 더 그렇다. 박완서는 성공한 작가다. 그런 작가도 타계 1년 전 ‘못 가본 길’을 노래하며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성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글을 남겼다. 회한의 그림자가 짙다.

회한을 남기는 게 어찌 전쟁뿐이랴. 경제난도 있고 사회 혼란도 있다. 나라가 멀쩡해야 사람도 숨 쉬고 꿈꿀 수 있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 그래서 걱정이다. 이 시점의 정치권 결정에 따라 국민 회한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다. 간곡히 요청한다. 정략적 발상은 접고 최우선적으로 국가 위기 관리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국민의 꿈과 민생을 살펴주기를.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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