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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의사 가족의 좌충우돌 백인 마을 정착기

입력 : 2016-11-03 21:12:19 수정 : 2016-11-03 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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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 람발디 감독 ‘아프리칸 닥터’

프랑스에서 개인병원을 열고 의사로 살면 인생 쨍하고 해 뜰 줄 알았다?

‘아프리칸 닥터’는 아프리카 콩고 출신 의사 세욜로(마르크 징가) 가족의 ‘빡센’ 프랑스 정착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아프리칸 닥터’는 1975년 프랑스 북부의 시골 마을 말리고몽에 정착한 콩고 출신 의사 가족의 고군분투 정착기를 그린 감동 실화로, 낯선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문화의 차이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사려 깊게 다뤄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필앤플랜 제공

줄리앙 람발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두 세계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마치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하는 연인들의 초기 관계와 닮았다. 처음엔 낯설어 경계심도 갖지만 지내면서 점점 신뢰가 쌓인다. 그리고 어느새 생겨난 사람에 대한 믿음은 그 어떤 어려움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낯선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문화의 차이를 유머러스하면서도 사려 깊게 다뤄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골고루 받은 작품이다.

원제 ‘Bienvenue a Marly-Gomont’는 ‘말리고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뜻이다. 원안 제공자는 프랑스의 유명 가수이자 개그맨인 카미니. 2006년 발표해 히트한 노래 ‘말리고몽’의 가사가 시나리오의 단초다. 콩고 출신인 그는 실제 1975년 프랑스 말리고몽에 정착해 평생 동안 의사로 살아온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헌정의 의미로 노랫말을 썼고, 대박에 힘입어 영화를 구상했다. 처음엔 카미니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쥐었지만 힘에 부치자 람발디 감독이 이어받아 각색과 연출을 거쳐 최종 완성했다.

이제 막 의사자격증을 손에 쥔 아프리카 콩고의 세욜로는 프랑스 시민권을 얻기 위해 프랑스 북부의 작은 마을 말리고몽에 병원을 열기로 결심한다. 말리고몽은 파리에서 300km나 떨어진 곳으로, 주민 전체가 평생 흑인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골이다. 말리고몽 시장은 흑인인 세욜로가 절대 마을 주민들에게 환영 받지 못할 거라고 만류하지만, 그는 한술 더 떠 아프리카의 가족들까지 모두 불러들이며 핑크빛 미래를 꿈꾼다. 프랑스 하면 파리? 세욜로의 가족들은 에펠탑과 샹제리제를 상상하며 한껏 들뜬 상태로 말리고몽에 도착하는데, 오 마이 갓, 여기는 고향 콩고보다 더 낙후된 깡촌이다. 설상가상 살면서 흑인을 처음 본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마치 벌레 보듯 경계한다.

개봉하는 영화의 메인 포스터에 흑인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우기란 아직까지도 프랑스 현지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마크 진가와 에이사 마이가가 부부 역으로 투톱 주연한 ‘아프리칸 닥터’는 그 전례를 깬 영화다.

세욜로 역의 마르크 징가는 실제 나이답지 않은 원숙한 연기와 영화 속 시대 배경인 1970년대에서 빠져나온 듯한 비주얼로 관객의 눈길을 붙잡는다. 남편·아버지·의사 세 가지 역할 속에서 고뇌하는 복잡한 인물이지만, 비극적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가족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고군분투한다. 그는 짧은 배우 경력에도 불구하고, 2015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디판’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4년 콩고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벨기에로 이주해 성장한 그는 프랑스로 건너가 작은 영화와 TV드라마 단역부터 시작하며 경험과 실력을 쌓았다. 그룹  ‘더 피스 프로젝트’의 리드 가수로도 활동했다. 지난해 ‘가장 가능성이 큰’ 신인 배우에게 주는 마그리트 상을 거머쥐었다. 프랑스 영화에서 이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세욜로의 아내 역은 프랑스 영화계에서 꽤 인지도가 높은 아이사 마이가가 맡았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아프리카 출신의 당당한 여성 모습을 밝고 열정적이면서도 영리하게 표현한다. 그는 콩고에서 이주해온 캐릭터인 만큼 링갈라어(콩고어)를 프랑스어 스타일로 구사하면서 극의 사실감을 높인다.

영화는 이주민이 뿌리 깊은 차별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고 고난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올해 칸영화제 필름마켓에서 이 영화를 보자마자 구매해 국내에 들여온 이는 바로 영화배우이자 감독이며 미디어 활동가로 알려진 마붑 알엄이다. 그는 이제 이마붑이란 이름으로 귀화한 한국인이다. 2009년 영화 ‘반두비’의 주연을 맡아 이주노동자 청년 카림을 연기했다.

‘아프리칸 닥터’는 그가 지난해 차린 유럽과 서남아시아 영화 수입·배급사 M&M인터내셔널이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그는 이주 초기 한국에서 인종차별을 수없이 겪었고, 영화 출연으로 유명해진 뒤엔 협박 전화도 종종 받은 사실을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털어놓은 바 있다.

“영화 속 흑인 가족들이 프랑스에서 겪는 차별은 먼 과거와 먼 나라의 일이 아닙니다. 이주민인 제가 국내에 이 영화를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입했어요.”

이 대표는 “여전히 낯설고 문화가 다른 이주민들과 한국인 선주민들의 ‘일상적인 만남’을 기대한다”며 “다양한 다문화사회의 면면을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도 세계 각국의 다양성 영화를 들여오겠다”고 말한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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