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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고사목 경제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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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4 01:03:29 수정 : 2016-10-04 0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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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짱이 경제 놀음에
해외로 쫓겨나는 기업 투자
경제 살릴 ‘대처 개혁’ 어디 가고
법인세 인상만 말하는가
‘세계경영’이 들불처럼 번진 적이 있다. 이 기치를 내건 곳은 대우였다. 세계 곳곳에 공장을 세우고 거미줄 같은 지사망을 구축했다. 김우중 회장. 통이 참 컸다. 기업 이름부터 다르다. 대우(大宇). 큰 대에 집 우. ‘우’ 자는 하늘, 천하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명언을 남겼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 말에 담긴 뜻은 대우 이름에 새겨져 있었다. 1999년 대우는 침몰했다. 한때 경제계 거목이었던 그는 이제 80세다. 지금에는 무슨 말을 할까.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세계로 나가라”고.

왜 세계경영을 내걸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 수출로 일어서야 하는 나라. 하지만 경제는 고비용·저효율에 시퍼렇게 멍들고 있었다. 1990년대에도 그랬다. 산처럼 쌓이는 빚. 결국 국가부도로 이어진다. 부도 밑바닥에는 고비용·저효율의 독버섯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세계경영을 달리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척박한 땅에서 말라죽지 말라. 세계로 나가라.”

강호원 논설위원
몰락한 대우. 세계경영은 생명을 다한 걸까. 그럴 턱이 없다. 기치를 내걸지 않을 뿐 시대 흐름으로 바뀌었다.

멕시코 페스케리아에 문을 연 기아차 공장. 1조원을 투자했다. 공짜로 받은 150만평 땅에 세워진 공장에서는 연간 40만대를 생산한다. 이 공장뿐 아니다. 현대·기아차는 곳곳에 공장을 세웠다. 미국 브라질 러시아 체코 터키 인도 중국 슬로바키아…. 국내에는 공장을 짓지 않는다. 1996년 아산공장을 마지막으로 새로 지은 적이 없다. 지을 이유도 없다. 짓는다면? “바보” 소리밖에 들을 것이 없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노동생산성이 도요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판에 망하기로 작정하지 않은 바에야 지을 수 있겠는가. 다른 기업도 다르지 않다. 삼성, LG? 원가를 낮출 해외 투자처를 기를 쓰고 찾는다. ‘기업 탈출’ 현상은 끄기 힘든 산불로 변했다. 이것저것 눈치를 봐야 하기에 입을 다물고 있을 따름이다.

10대 그룹 사내유보금 550조원. “왜 투자를 하지 않느냐”고 한다. 국정감사장에서 또 그 소리가 나왔다. 물에 빠진 자가 바짓가랑이를 잡는 소리 아닌가.

추투(秋鬪). 듣도 보도 못한 말이 만들어졌다. 춘투와는 다르다. 고질화된 노동귀족의 파업을 이르는 말이다. 파업에 나선 금융·철도·지하철 노조. 모두 ‘신의 직장’ 소리를 들을 금융·공공 노조다. 노동귀족을 이르는 대명사처럼 변한 현대차 노조도 어김없이 이름을 올리려 한다. 무엇을 위한 파업일까.

20년 넘은 고질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더 깊은 고비용·저효율의 늪에 빠진다.

이런 말을 할지 모르겠다. “해외로 나가 번 돈으로 먹고 살면 되지 않느냐.” 그런 기제가 작동하기도 한다. 현대차 임직원이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것도 그에 닿으니. 언제까지 가능할까. 오래가지 못한다. 왜? 해외에서 땀 흘려 번 돈을 꼬박꼬박 국내로 이전해 높은 임금을 주고, 많은 세금을 내며 베짱이를 먹여 살리겠다고 각오하는 기업이 있을까. 세금을 적게 내는 곳으로 옮기는 기업은 수두룩하다.

기업 탈출에 허물어진 산업 기반. 베짱이는 오래 버틸 수 없다.

법인세를 올리겠다고 한다. 왜 올리자는 걸까. 600조원 나랏빚을 갚기 위해?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뒷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 복지 포퓰리즘에 쏟아부을 돈을 걷기 위해서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일본 필리핀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모두가 법인세를 내렸다. 실효세율 논란이 있다 할지라도 논란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철학은 빈곤하기 짝이 없다. 법인세 인상을 외치며 왜 경제 살릴 방도에는 입을 다무는가. 누가 알곡을 더 챙길 것인지 다투며 말라 버린 밭을 살릴 궁리는 하지 않는 꼴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돈은 땅을 공짜로 주는 곳으로 빠져나간다. 종국에는 모두가 굶주린 베짱이로 변한다.

고사목으로 변해 가는 나라경제. 20년이 넘었다. ‘고비용·저효율의 노조천국’ 영국을 뜯어고친 마거릿 대처 개혁. 언제까지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들어야 하나.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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