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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각자 내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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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9-28 00:43:38 수정 : 2016-09-28 00: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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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는 ‘육자염결’ 되새기며
김영란법 시행 부끄러워해야
사회적 관행 완전히 바꿀 때
투명한 공정 사회에 다가설 것
다산 정약용은 친구의 아들에게 고을 수령이 지녀야 할 덕목에 관한 글을 남겼다. ‘다산시문집’에 수록된 ‘영암군수 이종영에게 주는 말’이다. 옛날 소현령(蕭縣令)이 고을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부구옹(浮丘翁)이 ‘여섯 글자의 비결’을 알려주겠다며 여섯 번 모두 청렴할 염(廉) 자를 써줬다는 일화가 담겨 있다. ‘육자염결(六字廉訣)’이다. 부구옹은 “청렴에서 밝음이 나오는 법일세. 사물이 실정을 숨길 수가 없게 되네”라고 했다고 전했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수령의 본무로, 모든 선한 일의 근원이요 모든 덕의 근본”이라며 “청렴한 관리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지나는 곳은 산과 물과 돌멩이까지도 맑은 빛을 입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 모든 공직자가 되새겨야 할 말이다.

오늘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공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제1조는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제2조에는 ‘공직자 등’을 국가·지방공무원, 공직 유관단체 및 공공기관의 장과 임직원, 각급 학교의 장과 교직원 및 학교법인 임직원, 언론사 대표자와 임직원이라고 규정했다. 애초에 공직자만 대상으로 했다가 공공기관·사립학교 종사자와 언론인 등으로 확대했다.


박완규 논설위원
뒷말이 무성했다. 법 적용 대상 기관이 4만919개에 달하는데 대다수가 학교와 언론사다. 교사와 기자를 공직자와 한데 묶어 규제하는 게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런 것도 법으로 잡아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드는 사건들이 주로 적발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에서는 법 적용 대상이 광범위한 데다 ‘직무 관련성’ 같은 김영란법의 핵심 개념이 모호해 적잖은 혼선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공권력의 자의적 행사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최근에 참석한 여러 모임에서 김영란법은 주요 화젯거리였다. 기업 관계자는 공무원과의 일처리가 여러모로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힘있는 사람의 은밀한 청탁은 여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무원들은 법 적용이 너무 까다롭다고 아우성이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외교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주요국 주재 고위 외교관이 한국에서 간 공공기관 측과 만찬 약속을 잡았다가 식사비 문제에 난색을 표했다는 얘기가 들리니 엄살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대로 시행된다. 청렴 사회를 원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워낙 확고하기 때문이다. 고위 판검사들이 비리 의혹으로 검찰에 불려가고, 한 언론인이 기업의 돈으로 전세기 타고 호화여행을 한 게 드러난 뒤로는 반대한다는 얘기를 하기가 어색해졌다.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이제 법 적용 대상자들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임직원 등 많은 사람들이 김영란법 해설서를 들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한 금품수수를 원천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사교·의례, 부조 등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3만원 이하 음식물, 5만원 이하 선물, 10만원 이하 경조사비는 허용하는 예외조항이 있다. 이 기준이 현실에 부합하느냐는 논란이 일지만 본질은 그게 아니다.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은 “간단하게 말하면 공짜 밥 먹지 말고 공짜 골프 치지 말고 애매하면 더치페이(각자내기)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부터 작은 청탁이나 소소한 접대행위도 용납되지 않는다. 혈연·학연·지연 등으로 인맥을 쌓은 뒤 이권청탁으로 욕심을 채우던 사람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어찌 보면 이런 법이 만들어지고 온갖 논란이 벌어진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앞으로 접대문화와 조직문화를 중심으로 사회적 관행이 많이 바뀔 것이다. 법 취지에 맞게 투명하고 공정한 청렴 사회에 성큼 다가서게 되길 바란다. 우리 사회가 김영란법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만큼 바뀌기를 소망한다. 먼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법이 왜 제정됐는지를 돌아보고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그래야 청렴 혁명을 이룰 수 있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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