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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이런 누진제, 원숭이도 못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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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18 21:57:07 수정 : 2016-08-18 21: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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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지금 크게 두 부류다
화 난 사람들과 화 날 사람들
전기료 폭탄 더 터지기 전에
가급적 서둘러 대책 세워야
‘걱정도 팔자’라 해도 할 수 없다. 걱정이 태산이다. 다들 겁내는 전기요금 폭탄이 우리 집에선 어떻게 터질지 몰라서다. 그제 본지에 소개된 광주 서구 윤모씨 사연을 보고는 간이 더 쪼그라들었다. 지난 8일까지 한 달 쓴 전기요금 문자 고지를 받아보니 ‘32만9000원’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전력 사용량은 733kWh로 전달에 비해 50%쯤 는 반면 청구액은 3배 가까이로 폭증했다. 말 그대로 폭탄이다.

광주 서구 윤씨 사연은 얘깃거리가 못 될지도 모른다. 어제 석간엔 평소 8만원 안팎 청구액이 42만원, 52만원대로 각각 치솟았다는 대구 달서구 김모씨, 서울 구로구 정모씨 사연이 실렸다. 5∼6배로 오른 청구액에 불의의 카운터펀치를 맞은 권투선수처럼 처절하게 나가떨어진 사연이 굴러다니는 것이다. 어린 자녀를 키우거나 노인을 부양하는 가정이 가장 취약하다. 주택용 전기에만 적용되는 누진제가 이토록 파괴적이고 엽기적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당·정 태스크포스(TF)가 어제 처음으로 가동됐다. 중장기 대책을 내놓는다는 TF다. 하지만 큰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중장기 개편’은 대개 ‘현상 변경은 당분간 없다’는 부정적 의지를 함축하는 수사다. 어제 회의에선 ‘하나하나’ 살펴보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그렇게 살펴보다 1년반 남은 임기를 넘길지도 모른다. 어찌 속없이 환호할 수 있겠나.

현행 누진제는 국민 일상생활을 짓누르는 괴물이다. 전기를 100kWh 더 쓸 때마다 요금이 너무 가파르게 오른다. 501kWh 이상을 쓰는 최종 6단계에선 kWh당 709.5원의 징벌적 요금을 물게 된다. 1단계의 11.7배다. 산업용 81원, 일반용 105.7원과도 견줄 수 없다. 이래서 광주 서구 윤씨 등이 눈이 튀어나오는 고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영국 독일 등 단일요금 국가라면 상상도 할 수 없다. 누진배율이 1.1배, 1.4배인 미국, 일본과도 비교불가다.

갈 길은 뻔하다. 최선은 누진제 철폐, 차선은 누진배율 축소다. 그러나 열쇠를 쥔 산업통산자원부는 불가사의에 가깝게 답답하다. 산업부 고위직의 12일 발언이 좋은 예다. “1974년 누진제를 도입할 때 목적이 에너지 절약과 계층 간 형평성이었다”면서 “누진제 개편으로 요금이 인하되면 전력 수요가 늘어날 텐데 이때 안정적으로 전력 공급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42년 전, 그러니까 전기다리미 등이 사치품으로 통하던 시절의 잣대로 21세기 일상을 옥죄겠다는 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 웃기는 것은 ‘안정적 전력’ 운운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주택용 전기는 13.60%다. 산업용은 56.60%, 일반용(상업용)은 21.40%다. 전력 여유분이 필요하다면 다른 쪽을 챙겨야 하는 것이다. 대체 왜 번지수도 못 찾는 것인가.

부당한 상황을 오래 참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 원숭이도 못 참는다. 정부 여당은 2003년 9월 ‘네이처’에 실린 원숭이 실험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장류학자 새라 브로스넌과 프란스 드 발은 4개의 토큰을 주고 오이를 먹으려면 토큰을 대가로 내도록 훈련을 시켰다. 그런 다음 어떤 원숭이에겐 공짜 포도를 줬고 다른 원숭이에겐 오이를 주면서 토큰을 요구했다. 포도는 원숭이가 더 좋아하는 먹이다. 공짜 포도 대신 오이를 받은 원숭이는 심기가 불편할밖에. 원숭이는 10번에 8번꼴로 토큰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불공정 거래를 못 참아 판을 엎은 것이다. 인간은 어떻겠나.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폭탄 고지서를 받아 화가 난 이들이다. 다른 하나는 앞으로 화가 날 이들이다. ‘누진제의 불공정성’이 화근이다. 한국전력이 상반기에 6조3098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는 분석자료가 어제 공개됐다. 대체 누구 등을 쳐서 그리 큰 돈을 번 것일까. 광주 서구 윤씨 등은 한전과 산업부를 싸잡아 악당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걱정도 팔자’라 해도 할 수 없다. 걱정이 태산이다. 당·정 TF가 왜 다들 화를 내는지 직시하면서 서둘러 행동하는 대신 말잔치나 벌일까 봐서다. 그런다면 국민을 원숭이보다도 낮춰 본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광주 서구 윤씨 등은 더욱 분통이 터질 것이다. 원숭이가 그랬듯이 판을 엎을지도 모른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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