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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히 숨진 쪽방촌 주민… 마지막 가는 길 따뜻했다

입력 : 2016-01-21 19:22:19 수정 : 2016-01-21 20: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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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동 무연고자 '작지만 특별한 장례식' “지난 9월, 철구씨가 저를 찾아와서는 ‘병원에 가고 싶은데 치료비가 없다’며 도움을 청했습니다. 술만 마시면 자주 시비를 걸던 사람인데 그런 약한 모습을 보이니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21일 오전 11시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내 사랑의쉼터 건물 지하 교육실. 위패와 영정사진이 놓여진 상을 앞에 두고 상복 차림을 한 이화순 사랑의쉼터 소장이 담담한 목소리로 최근 고인이 된 김철구씨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6평(19.8㎡) 남짓한 작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인 이곳 주민 10여명이 숨 죽인 채 이 소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부는 영정 속 무표정한 고인의 얼굴을 지긋이 응시했다. 이 소장은 “이제 철구씨를 충분히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더 잘해줄 걸’”이라며 추도사를 끝 맺었다.

21일 서울 종로구 돈의동 사랑의쉼터 쪽방촌에서 거행된 무연고자 장례식.
서상배 기자
이날 돈의동 쪽방촉에서 고인이 된 이웃을 위한 ‘작지만 특별한 장례식’이 진행됐다. “이웃의 죽음을 잠깐이라도 추모하고 싶다”는 이곳 주민의 오래된 뜻을 받아들여 사랑의쉼터와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처음으로 힘을 모은 것이다. 통상 무연고자인 쪽방촌 주민은 사망시 장례 절차 없이 화장 처리된다.

장례식의 주인공인 김씨는 10여년 전 이곳 쪽방촌에 들어왔다. 가족과 어떤 연락을 끊은 채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잇던 김씨는 수개월 전 간경변증, 고지혈증 등 합병증이 악화돼 지난 8일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김씨의 시신은 오는 29일 화장 절차를 밟아 경기 파주의 서울시립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장례식을 찾은 주민 박동기(62)씨는 “김씨가 술을 마시면 욱하는 성질이 있었지만 원래 성격은 내향적인 편이었다”며 고인에 대해 추억했다. 

이날 돈의동 쪽방촌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도 오랜만에 활기를 띠는 모습이었다. 주민 오향근(60)씨는 “10년간 얼굴을 마주하고 살았던 사람인데 그냥 휙 사라지면 아무리 원수라도 허전하지 않겠냐”며 “나도 이런 관심 속에서 하늘나라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안병일(56)씨는 “이전에는 이런 기회가 없다보니 이웃이 죽으면 혼자 비좁은 집 안에서 술상을 차리고 장례를 치르는 사람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 측은 무연고자를 위한 장례식을 서울 시내 전역에 확산할 계획이다. 우은주 사무국장은 “서대문구와 협조해 무연고자 대상 ‘작은 장례’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가족 대신 곁을 지키던 이웃들이 마지막을 같이 하는 과정을 통해 점차 사라져가는 공동체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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