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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같은 상처 안은 우리 둘, 따뜻한 驛 만들어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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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10 20:39:24 수정 : 2015-07-21 19: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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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부천 역곡역 안에는 조금은 ‘특별한’ 직원이 있다.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 종일 창밖을 바라보거나 조금은 서툰 걸음걸이로 역사를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게 일이다. 그런데도 그를 보는 사람마다 반갑게 달려와 인사를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면 수백명이 열광하고, 그를 보기 위해 역 사무실 안을 기웃거리는 이들도 많다. 노란 털의 고양이 ‘다행이’다. 다행이 곁에는 그와 꼭 닮은 따뜻한 인상의 김행균(54) 역장이 있다. “다행이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김 역장을 지난달 역곡역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행균 부천 역곡역장이 명예역장인 고양이 ‘다행이’를 안은 채 미소 짓고 있다.
부천=남제현 기자

다행이가 처음 사람들에게 발견된 건 지난해 1월 천안의 한 마트 주차장. 왼쪽 앞발 두마디가 잘린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는 아물었지만 조금 다른 신체 조건 때문인지 입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해 4월, 다행이가 안락사에 처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 역장은 다행이를 역곡역으로 데려왔다. 김 역장이 다행이를 외면할 수 없던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는 2003년 서울 영등포역에서 근무하던 중 선로에 있던 아이를 구하고 왼쪽 발목 아래와 오른쪽 발가락을 잃었다. 현재 왼쪽 다리는 의족을 하기 위해 무릎 아래 10㎝ 정도만 남긴 상태다. 그가 ‘아름다운 철도원’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역장은 “다행이를 데려올 때 거창한 생각은 없었다. 정 안 되면 집에 데려가서 키울 생각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지만, 다행이와 김 역장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줬다.

처음부터 사람을 잘 따르고 얌전했던 다행이는 역곡역에 온 뒤 금세 없어서는 안 될 ‘마스코트’가 됐고, 지난해 9월에는 명예역장으로 취임했다. 김 역장은 “직원들도 워낙 예뻐하고 역을 이용하는 시민들도 좋아한다. 이제는 식구나 다름없다”며 웃었다. 다행이의 특별한 사연이 SNS 등을 통해 인기를 끌면서 다행이를 보러 사무실을 찾는 발길도 늘었다.

김 역장은 “요즘도 평일에는 10여명, 주말에는 20여명이 다행이를 보기 위해 역장실을 들른다. 출퇴근 길에 잠깐 오기도 하고 와서 차를 마시며 쉬다 가기도 한다”며 “사무실이 시민들의 사랑방이 됐다. 다행이 덕분에 시민들과도 좀 더 가까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행이의 인기는 역장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역장실 한쪽 벽에는 다행이를 보러 들렀던 이들이 남긴 손편지들이 가득하다. 다행이에게 애정을 표현하거나 다행이를 보며 장애나 유기동물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내용들이다. 현재 다행이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팔로우하는 사람은 7600여명. 사진이나 동영상이 올라갈 때마다 조회 수는 수천건, ‘좋아요’는 수백건에 이른다. 한 미대생이 그린 다행이의 그림은 시민들의 모금을 통해 다행이의 사연이 담긴 동화책으로 만들어졌고, 지역 아동센터와 유치원 등에 무료로 3000부가 배부됐다. 최근에는 역곡역 인근에 다행이를 그린 벽화도 생겼다. 김 역장은 “모두 다행이를 예뻐하는 분들의 재능 기부로 이뤄진 일”이라며 “다행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역장은 다행이를 만난 후 자신의 삶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그는 “다행이를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생각의 폭도 넓어졌고 다행이를 보며 위안을 받기도 한다”며 미소지었다. 그에게 다행이는 이제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됐다. 정년퇴임을 하면 시골에 내려가 동물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꿈도 생겼다. 김 역장은 “다행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이라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역곡역에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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