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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척박한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바꿀 밀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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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09 23:37:20 수정 : 2015-06-09 23: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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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전용복지관 세운 방대유 복지법인 ‘나사함’ 이사장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잘 사는 사회가 진정 꿈꾸는 세상입니다.”

국내 첫 발달장애인 전용 복지관을 세운 사회복지법인 ‘나사함(나누고 사랑하며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 방대유(56) 이사장의 꿈은 세상을 향해 있다. 방 이사장은 경남 양산시에 복지관과 발달장애 전용 생활시설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을 위한 전문시설을 만들기 위해서다.
사회복지법인 나사함 방대유 이사장은 “국내 발달장애인이 20만명이 넘는 점을 감안하며 발달장애복지관이 최소 1500개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열악한 발달장애지원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힘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울산=이보람 기자

방 이사장을 최근 양산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6년째 발달장애인 지원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인 그를 만나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미안함’이 밀려왔다. 국내 등록된 장애인 중 발달장애인은 모두 20여만명. 이들은 영화 ‘맨발의 기봉이’, ‘말아톤’, ‘레인맨’처럼 지능발달이 불완전해 사회생활 적응이 곤란한 사람들이다. 언어·신체표현·자기조절·사회적응 기능이 떨어져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들에게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절실하다. 보호에 지친 가족이 발달장애 가족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살해하는 등 가정이 무너지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방 이사장은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소원은 부모 없이도 사회구성원으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면서 “이들을 위한 복지관과 생활시설 건립은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첫 단추일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평범한 약사인 방 이사장의 삶이 달라진 건 아들에게서 비롯됐다. 아들 형국(29)씨는 현재 자폐증을 앓고 있다. 아들이 세 살 때 처음 질환을 발견하고 좌절했다. 아들의 장애를 고쳐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국내에선 아들의 상태를 진단받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당시 전문가가 단 한 명뿐이었다. 자폐진단을 받으려면 1년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1989년 세 살 된 아들을 데리고 미국의 소아전문병원을 찾아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 심리치료사 등 전문가 6명은 3주에 걸친 검사 끝에 ‘소아자폐’라는 결론을 내렸다. 병원은 수 백장의 검사결과와 함께 학교, 병원, 가정을 연결하는 장애인 통합교육 시스템을 안내해줬다. 그는 “발달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미국의 시스템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장애인통합교육 시스템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은 방 이사장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줬다. 그는 당시 인상 깊게 겪었던 경험을 소개했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아들의 가방에 편지 두 통과 꼬깃꼬깃한 돈이 들어있었다. 한 통은 교장의 사과문, 다른 한 통은 비장애인 여자아이 부모의 사과문이었다. 돈은 여자아이의 저금통을 깬 것이라고 했다. 여자아이가 학교에서 방 이사장의 아들을 놀린 일 때문이었다. 학교에선 여자아이에게 2주간 학교 운동장에서 놀 수 없다는 벌도 내렸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놀리면 벌이나 훈계, 사과문 따위로 비장애인의 행동을 교정한 뒤 그 결과를 장애인 학부모들에게 알려줬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일반화돼 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2년간 통합교육과 치료를 받으면서 방 이사장은 자폐는 치료할 수 없는 ‘장애’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부모 없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시스템을 만들자”고 다짐했다.

그 첫걸음이 2000년 설립된 사단법인 나사함이었다. 방 이사장과 같이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 심리·복지·특수교육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2005년 부산대 행정대학원에서 늦깎이 학생으로 사회복지학 공부에도 나섰다. 이어 사회복지법인 나사함 복지재단을 설립했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전국 첫 발달장애인 전용복지관인 ‘나사함복지관’을 건립하는 데까지는 4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반발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고 설득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호체계나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2009년 나사함복지관 건립 당시 부산보다 인구가 적은 일본 후쿠오카에는 제도권 내 발달장애복지관이 84곳이 있었다. 6년이 지난 현재 국내 발달장애 복지관은 8곳뿐이다. 서울에 5곳, 부산, 광주, 전남에 각각 한 곳이 있다.

방 이사장은 “발달장애인이 20여만명이라면 최소한 1500개의 복지관이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8곳”이라며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역자치단체별로 한 곳씩은 있어야 하지만 국가와 사회는 무관심하다”며 “장애인 정책과 예산도 신체장애에 치우쳐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진행 중인 생활시설 건립도 순탄치 않다. 경남도와 양산시가 법인 인가조차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 이사장은 “최근 발달장애인이 두 살 난 아기를 3층 밖으로 던져 숨지게 한 사건도 성인 발달장애인에 대한 시스템이 없다 보니 생긴 비극”이라며 “지자체가 할 일을 대신하는 만큼 관심과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발달장애가족을 위한 영구거주시설과 보호작업장, 대안학교도 만들 계획이다. “아들이 척박했던 국내 발달장애 지원시스템을 바꾸는 밀알이 되도록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10년을 내다보고 하나하나 해나갈 생각입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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