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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前만해도 책·신문 이렇게 인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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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1 21:14:51 수정 : 2015-04-21 2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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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 활자 직접 주조·문선·조판·인쇄·제본까지…국내 마지막 납 활자 인쇄소 파주 ‘활판 공방’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서 그런가 영 흐리게 나오네….” 날씨와 기온에 따라 잉크 양을 조절해 줘야 한다며 인쇄 담당 김진수(61)씨가 인쇄기 롤러에 잉크를 보충했다. 인쇄기가 다시 ‘철커덕 철커덕’ 소리를 내며 새하얀 한지에 검은색 글자를 꾹꾹 찍어냈다. 김씨가 인쇄된 한지를 들어 살펴보곤 이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문선과 조판을 담당하는 권용국씨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납 활자 속에서 필요한 활자를 골라내고 있다.
활판 인쇄는 원고에 맞춰 작은 납 활자를 하나하나 뽑아 조판틀에 끼워야 하는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파주출판도시 한쪽에 자리 잡은 ‘활판공방’은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 인쇄 방식이 도입되면서 급속히 사라져 버린 활판 인쇄를 부활시켜 10년째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유일의 납 활자 인쇄소다.

납 활자를 이용한 활판 인쇄 방식은 주조, 문선, 조판, 인쇄, 제본의 과정을 거쳐 한 권의 완성된 책을 만들어 내는데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조판 과정에서 잘못 끼워진 활자를 핀셋을 이용해 빼내고 있다. 크기가 워낙 작은 활자들이라 작업에 각종 도구를 이용한다.
주조공 정흥택씨가 1944년도에 제작된 주조기계로 납 활자를 찍어내고 있다.
납을 녹여 활자로 찍어내는 주조 담당 정흥택(75)씨는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주조기계 앞에서 막 나온 납 활자를 돋보기로 살피다 이내 불량품 통으로 던져버렸다. 불량 활자가 섞여 들어가면 인쇄를 망치는 경우가 있어 주조는 활판 인쇄의 맨 처음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주조기에서 만들어진 납 활자들을 돋보기로 확인하고 있다. 글자 모양이 잘못 나온 활자는 녹여서 재활용한다.
조판 틀에 활자를 하나씩 끼워 넣는 작업을 하던 문선 조판 담당 권용국(82)씨는 “1980년대 중반까지는 신문도 이렇게 활판 인쇄를 했는데 요즘은 책이든 신문이든 전자식으로 쉽게 척척 찍어내는 시대라 아날로그식 인쇄의 낭만이 사라져간다”며 아쉬워했다.

인쇄 담당 김진수씨가 인쇄돼 나온 한지를 살펴보고 있다. 활판 인쇄는 날씨에 따라 사용되는 잉크의 양이 달라지는 섬세한 작업이다.
한지에 찍혀 나온 글자의 요철에서 활판 인쇄의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
‘활판공방’의 박한수(48) 대표는 “활판 인쇄는 책 한권 제작시간이 컴퓨터 인쇄의 10배, 비용은 20배쯤 들어간다”면서 “경제적 이윤을 따지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활판 인쇄만이 가진 고유의 장점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자식 인쇄 책의 보존기간은 길어야 100년 안팎이지만 활판 인쇄 방식의 책은 500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문학전집이나 사상전집 등 오래 보관해야 하는 책은 지금도 활판으로 찍고 있죠.”

활판공방을 찾은 어린이들이 납 활자들을 신기한 듯 살펴보고 있다. 인쇄소는 서적 제작 외에도 견학 및 인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는 서양의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개발해낸 활자 종주국”이라며 “인쇄소 운영이 여러 면에서 힘들지만 그런 자긍심을 가지고 활판 인쇄 방식을 힘 닿는 데까지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박한수 대표가 활판공방에서 처음 제작한 시집을 들어보이고 있다. 활판공방은 올해로 10년째를 맞는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박 대표가 한지에 찍은 윤동주의 서시를 기념 선물이라며 건넸다. 시인의 감정이 글자 하나하나의 요철에 담겨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다.

사진·글=남제현 기자 jeh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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