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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사회문제에 뛰어든 우리네약국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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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10 19:37:59 수정 : 2015-04-10 20: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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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보건복지단체 산파역 ‘우리네약국’ 박혜경 약사
“의료 소외지역 없는 건강한 대한민국 꿈꾸죠”
약대 졸업 후인 1990년대 초반 소외지역을 찾아간 약사가 있다. 그는 서울 구로지역에서 사반세기 동안 지역주민의 건강을 챙겼다.

구로3동 남구로역 인근에 위치한 우리네약국의 약사 박혜경(49)씨는 이른바 ‘486 운동권’ 세대다. 소녀같이 수줍은 표정에 말투는 나긋나긋하다. 숙명여대 약대에 다니던 1980년대 후반에도 그는 비교적 조용한 학생이었다. 그러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겪으면서 사회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레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서울 구로지역에 들어간 이후 25년 가깝게 소외지역 주민의 건강을 돌본 우리네약국의 약사 박혜경(49)씨가 지난 8일 약국 안에서 밝게 웃고 있다.
김범준 기자
박씨는 1990년 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단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에 가입했다. 그는 “당시에는 어떻게 하면 좀더 사회에 참여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갈지 고민하던 때라 건약에 가입하는 졸업생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약대·의대생들이 구로에서 ‘건강의 집’이라는 노동자 무료진료소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이들은 이 활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역약국을 만들기로 한다. 보건의료인들과 구로지역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1991년 탄생시킨 것이 우리네약국이다.

박 약사는 다음해인 1992년 합류했다. 처음에는 주로 직업병을 안내했는데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들곤 했다. 마침 그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하며 집집마다 돌아본 박씨는 ‘약국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노동자의 건강권보다는 지역주민의 건강권을 위한 활동을 강화하는 쪽으로 우리네약국의 활동 방향이 달라졌다.

1약국 2약사의 공동운영 형태로 운영되던 우리네약국은 이러한 지역활동의 폭을 넓히기 위해 1994년 구로본동에 또하나의 우리네약국을 열었다. 약사는 5명으로 늘었다. 5명의 여약사들은 지역주민들을 한데 모아 고혈압·당뇨교실 등을 열어 건강 정보를 제공하고 동네 모임으로 이끌어가는 공동체활동을 펼쳤다.

2000년은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실시 등 보건의료계가 큰 변화를 겪은 해다. 우리네약국도 그 변화 속에 있었다. 박씨는 “의료보험 통합 운동을 하며 정책 변화가 지역주민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체험하면서 보건의료정책이라는 보다 큰 틀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활동 범위도 약사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의 다른 보건의료인으로 확대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10년 정도 같이했던 5명의 약사들이 관심 분야가 달라지며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도 영향을 줬다. 그들은 우리네약국 한 곳을 정리하고 그동안 모은 수익금으로 ‘구로건강복지센터’라는 지역복지단체를 출범시켰다.

그 즈음은 노동운동과 정치운동이 쇠퇴하고 지역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점차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등 다른 진보적인 보건의료단체들이 우리네약국의 지역운동 사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보건의료네트워크라는 연대조직도 생겨났다.

우리네약국은 본격적으로 이런 단체들과 사업을 벌이게 된다. 인의협과 요보호아동 건강검진사업, 건치와 장애인 구강진료 사업을 했다. 박씨는 “그때 수시로 회의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환자 입장에서 보다 인간적인 진료를 할 것인가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얘기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약국에서 하던 지역활동을 센터로 독립시켜 내보낸 뒤에도 우리네약국은 매달 170만원의 센터지원기금을 보낸다. 박씨는 그러나 “활동가 급여로 쓰기에도 빠듯한 수준”이라면서 “그나마 수년간 센터 후원을 끊지 않는 보건의료인들의 ‘의리 후원’이 많아 큰 힘이 된다”며 활짝 웃었다.

다들 떠나간 구로에 계속 남은 이유는 뭘까. “2000년에 구로건강복지센터를 만들고 한 10년은 솔직히 힘들었어요. 하지만 만들었으니까 잘될 때까지 해야 된다는 의무감이 있었죠. 그러다 가족이 여기서 살게 되면서 내 삶의 터전이 돼 버렸어요. 이후로는 센터를 일궈가는 활동가, 즉 사람이 저를 계속 가게 한 힘이었던 것 같아요.”

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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