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흔적들 아직도 곳곳에…가시지 않은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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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진도 팽목항 인근에 취재차량과 응급차량 등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던 2014년 4월20일 모습. 그 자리에 3∼4평 되는 가건물이 10여 동 생겼다. 이곳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 경찰, 안산시, 경기교육청 관계자들이 임시숙소로 사용한다. |
세월호 참사(4월16일) 1주기를 앞두고 진도로 향하는 발걸음은 불편했다. 단지 1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참사의 아픔을 또다시 들춰내고 보도하는 것은 아닌지….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4월 첫째 날, 회색빛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나의 마음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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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5일이 지난 2014년 4월 21일 희생자 가족들로 북적이는 진도체육관의 모습(손에 든 사진)과 2015년 4월 1일 텅 비어 있는 체육관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현관에는 제54회 전라남도 체육대회, 국가 안전 대진단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
4시간30분 걸려 도착한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은 참사가 있던 1년 전 다급한 마음에 3시간30분 만에 도착했던 체육관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응급차량과 취재차량으로 가득했던 주차장엔 4대의 차량만 있었고, 같은 반 친구 여학생의 두 손을 꽉 잡으며 딸아이 생사를 묻던 어머니의 초조함도 없었다. 제54회 전라남도체육대회 준비가 한창인 진도 공설운동장 건설현장의 망치 소리와 5496㎡의 체육관 안에서 간간이 울리는 언론사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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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팽목항을 찾은 한 시민이 ‘천 개의 타일로 만드는 세월호, 기억의 벽’을 어루만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16일엔 천 개의 타일로 벽이 완성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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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시 시신을 실은 해경 경비정이 입항하던 선착장 오른편에 세월호 침몰사고 해역 위치를 표시해주는 노란 부표 5개가 널브러져 있다. |
먹구름이 물러간 오후 4시쯤 팽목항으로 향했다. 하늘이 파란 속살을 드러낼 즈음 자동차 창문을 반쯤 열어 봄바람을 느껴봤다. 보기 좋게 핀 벚꽃과 만개한 개나리는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벚나무엔 ‘실종자를 가족 품으로’라는 글이 적힌 색바랜 노란 리본이 휘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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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 방파제 입구에 걸린 아홉 명의 실종자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현수막. 그 뒤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경찰, 안산시, 경기교육청 관계자들이 생활하는 임시숙소에 불이 밝혀져 있다. |
대부분의 자원봉사자가 떠난 팽목항에서는 현재 경찰과 안산시, 경기교육청 직원들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지원하며 3∼4평 남짓한 임시건물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냥 안산시 자원봉사자라고만 해주세요.” 신분을 끝내 밝히지 않은 53세의 남성은 “유족들의 아픔이 하루속히 치유되길 바랄 뿐”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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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 동생 가족을 잃은 권오복(60)씨는 3∼4평 되는 팽목항 임시 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의 숙소엔 조카 권지연(6)양을 구조하고 실종된 조카 권혁규(7)군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동생 권재근(52)씨 역시 실종 상태다. 재근씨의 처 한윤지씨는 시신으로 돌아왔다. |
동생 가족을 잃고 팽목항에 남아 있는 유가족 권오복(60)씨는 “하루빨리 선체를 인양해야 한다. 정부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실종된 어린 조카들의 사진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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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면 팽목항은 암흑으로 변한다. 주변 식당 등에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 식당 주인은 “세월호 사고 이후 손님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
해가 지자 팽목항은 암흑으로 변했다. 인근의 한 식당 주인은 “이곳을 찾는 분들은 많지만 잠시 둘러본 뒤 그냥 돌아간다”며 “마음이 아픈 것은 마찬가지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손님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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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직후 단원고 학생들의 생명을 구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주민들이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를 찾은 지난 3월20일. 텅 빈 교실에 그들을 추모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
곧 세월호 참사 1년이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봄날의 진도…. 세월호 아픔을 다시 한번 나눠 갖자.
사진·글=김범준 기자
bjk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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