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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과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 가슴 뭉클했다
진짜·가짜, 돈·꿈, 세대 간 화해…
주제의식 선명 소설적 완성도 높아
아름다운 탑정호반에서 진행된 본심에서 예심을 거쳐 올라온 9편 중 4편을 뽑고, 다음날 ‘와초 문학뜰’에서 이어진 최종심에서 4편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환난의 세상은 날로 문학의 위상을 낮추고 가치를 무력화시키지만, 그럼에도 제11회 세계문학상 공모에는 문학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려는 패기발발한 작품들이 대거 응모되어 심사위원들을 바쁘고 즐겁게 만들었다.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는 지금까지 우리 문학에서 소재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재일 북송 교포들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성실한 취재를 통한 자료적 가치가 돋보여 ‘한국 문학에서 최소한 확보해야 할 소설’이라는 평이 있었다. 하지만 문장과 구성, 캐릭터라는 소설의 기본 요소들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민감한 주제를 안이한 시각으로 접근하는 위험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소설가 박범신 집필실 인근 논산 탑정호 앞에 선 11회 세계문학상 심사위원들. 왼쪽부터 하응백 박범신 김미현 은희경 임철우 김형경 김성곤 김별아 한창훈.
‘꽃그림자놀이’는 조선 사회 변혁의 시대였던 18세기에 금서가 되어버린 소설책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액자식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안정된 문장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재미있고 가독성이 높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렇지만 내용이 별반 새롭지 않고 역사적 해석 또한 독특하지 않아 텔레비전의 ‘사극’과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액자식 구성이 확보해야 할 본문과 액자 안 이야기들 사이의 유기적 연결이 미흡한 점이 아쉬웠다.

‘어느 철학과 자퇴생의 날들’은 성 소수자인 트랜스젠더를 엄마(혹은 아빠)로 둔 젊은이(혹은 소년)의 성장기로, 짐짓 위악적으로 느껴질 만큼 생생하고 처절한, 간만에 등장한 ‘밑바닥 소설’이었다. 거친 소재와 표현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삶에 대한 순정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지만, 이미 유행이 지난 소재가 신선하지 못하며 열린 결말이 책임회피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제목 그대로 서울 변두리 하천에서 오리를 잡아먹은 고양이가 아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아 헤매는 일종의 블랙코미디이다. 단순한 소재와 단순한 구성이 일면 소품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진짜와 가짜, 돈과 가족과 꿈, 세대 간의 화해라는 주제의식이 뚜렷하게 부각되었고 그것을 이끌어가는 입심이 만만찮았다. 말이 되지 않는 것을 말이 되게 쓰는 호기로움이 ‘완전하지 않은 삶도 완전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며 소설적 완성도를 높였다. 토론과 투표 끝에 4편의 작품 중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대상으로 뽑은 데는 이런 장점에 더하여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따뜻하고 뭉클한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의와 경원이 아닌 연민과 이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을 만나는 일은 그만큼이나 희귀한 기쁨이었다.

바야흐로 세계문학상의 연한이 10년을 넘어섰다. 문학상 수상작을 뽑을 때는 두 가지 기준을 두게 마련이다. 하나는 작품 자체가 상을 받을 만한 수준을 갖췄는가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장래에 대한 기대다. 부디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이, 그것을 읽는 사람이, 그리하여 문학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박범신 김성곤 임철우 은희경
김형경 하응백 한창훈 김미현 김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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