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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재생이란… 삶의 흔적이 담긴 시간을 지켜내는 것

입력 : 2014-12-30 22:14:02 수정 : 2014-12-30 22: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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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108〉 재생 # 살려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재생

‘재생’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재생이라는 말을 쓰기 위한 전제는 어떤 사물이나 생명체가 (거의) 죽었거나 용도 폐기된 상태여야 한다. 재생 타이어, 재생 화장지처럼 이미 썼던 원료를 다시 활용한 제품이나, 흉터나 손상된 세포에 바르는 재생 크림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재생의 원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멀쩡한 것을 쓰면서 공연히 호들갑 떨며 재생이라고 하는 것은 당연히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어색함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도시, 건축, 토목 등의 분야, 그중에서도 도시 분야에서 재생이라는 말을 가장 빈번하게,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다.

지자체들, 특히 서울시가 그 말을 애용한다. 도시환경정비, 혹은 도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던 사업들이 여러 가지 여건으로 주춤하게 되자, 같은 일을 하던 부서가 이제 서울 도시계획의 주요 사업 방향은 ‘재생’이라며 이름표를 바꿔달았다. 서울시는 한때는 복원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실소를 자아낸 적이 있었다. 세운상가를 허물고 그 일대를 재개발하는 명분으로, 역사적으로 있지도 않은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녹지축을 새로 만들면서 ‘복원’이라는 명분을 가져다 붙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업 핵심은 녹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운상가 주변의 오래된 골목을 쓸어버리고 대규모 주상복합 시설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때 알게 됐다. 사실 도시계획이라는 일은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며 굉장히 복잡한 합의가 요구되고 그에 따라 대단한 명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의도적 언어 왜곡을 하게 된다는 것을. 세상 일이라는 것이 늘 그렇다. 순진하게 교과서에 나온 대로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혼자 열심히 줄 서서 질서를 지키다 보면 “사람이 왜 그렇게 꽉 막혔어?” 혹은 “사람이 왜 그리도 순진해?” 등의 핀잔을 듣기 십상인 것처럼.

템스 강변의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변신시킨 테이트 모던 미술관. 재생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헤르조그&드뮤론 설계.
한번은 우리 사무실에 스코틀랜드 학생이 인턴으로 와서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 학생이 인턴을 끝내며 돌아가기 전에, 환송의 의미로 내 기준에 의거해 고른 서울에서 볼 만한 장소 몇 군데를 구경시켜 준 적이 있다. 3년 전 일이었는데 종묘를 보고 그 건너편으로 넘어가 세운상가와 장사동, 예지동 골목을 답사하는 중이었다. 세운상가에 올라가서 예지동 쪽을 내려다보며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건물 관리를 하는 분이 나에게 다가와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대체 왜 외국인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가?”

아마 그가 보기에는 그 복잡한 골목과 덕지덕지 붙어있는 근대화 혹은 산업화의 딱지들이 우리 치부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그게 아니고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라 건축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고,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장소라서 등등 길게 설명을 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면서 강력하게 저지했다. 하는 수 없이 자리를 피하며 세운상가의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그는 그곳까지 쫓아오며 우리가 그 건물에서 나갈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세운상가 인근의 오래된 길과 서울의 도시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하고 ‘아이 레벨’에서 답사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충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참 슬펐던 것은 우리에게 깊게 깔려 있는 ‘자기 부정’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 과거와 현실에 대해 늘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개선되어야 하고 타파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가 진행한 재생사업 중 가장 돋보이는 사례인 선유도공원. 조경가인 정영선과 건축가 조성룡, 다산컨설턴트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 유행처럼 번지는 도시 재생


과거의 것을 낡은 것, 바꾸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다 보니 늘 “부수고 새로 짓자”에 대한 잠시의 고민도 없다. 당연한 귀결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인다. 아직도 멀쩡한 동네에 혹은 아파트에 ‘사망언도’가 내려지면, 동네의 들머리에는 ‘경축, 안전진단 통과’, ‘경축 재개발사업 확정’ 등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내걸린다. 그 현수막을 보면서 나는 헛갈리곤 한다. 건물이 안전하지 못한데 축하한다는 말을 붙이는 것은 누가 봐도 엄청난 형용모순이고 우리의 감각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았던 곳이고 사는 동안 쌓여온 여러 가지 추억이 있는 곳을 허무는 것이 축하할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이런 전도된 가치관으로 인해 생기는 정서적인 장애는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큰 질병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일을 추진하는 일단의 사람들이나 그 일을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역사적인 경험을 같이 해온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조금만 더 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재개발을 하자며 들어와서 사람들에게 무언가 대단한 혁신과 경제적인 이득을 생길 것처럼 허장성세를 부려놓지만, 그 환경 개선의 대가는 기존 주민들이 치르고 열매는 다른 이들에게 돌아간다. 기존 주민의 재입주율이 낮다는 것이 그런 사실을 처절하게 반증한다.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사업은 과거에는 공동주거나 사무, 상업공간을 확대하는 데 그치곤 했다. 그러다가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등의 사례처럼 기능이 사라진 산업단지, 항만 등의 정비를 통해 문화기반시설을 확충하여 지역 경제를 부활시키는 계기를 만든 도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재생’이나 ‘복원’이 무슨 유행처럼 전 세계로 번져 갔다. 아무래도 기존의 도시 개발, 정비, 활성화 같은 거창한 명칭 대신 ‘도시 재생’이 좀 더 인간적이고 어딘가 친환경적이고 덜 부담스러운 단어인 모양이다. 주요 기능이 신도시로 이전된 후 낙후된 원도심의 재생이 지방 도시들의 화두가 되었고, 그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늘어났다. 

그런데 그 ‘재생하자’는 구호에는 빠진 것이 많다. 마치 주어 없이 동사만 있는 미완성형 문장 같다. 가령 누가(관 주도인지 민간 주도인지), 언제(당장 몇 년 내, 단체장의 임기 내에만 꼭 해야 하는지), 어디를(장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 없이 특정 건물, 예를 들어 특정한 센터 한두 개를 만들고 끝나는 건 아닌지), 어떻게(콘텐츠도 없이 일단 예산부터 쓰는), 특히 왜(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하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는 이전에도 있어왔던 도시계획 사업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에겐 몇 천억 원의 세금을 잡아먹고도 텅 비워진 채 한강에 둥둥 떠 있는 저 몹쓸 섬(?)이 있지 않은가.

최근 서울시에서 “자치구 공모를 통해 인프라·안전 등 생활여건이 열악해 도시재생이 시급한 지역 5곳 총 285만3000㎡를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사업’ 대상으로 첫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총 사업비 500억원을 투입하는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사업’은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생활권 단위의 환경 개선, 기초생활 인프라 확충, 공동체 활성화, 골목경제 살리기 등을 통해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을 실현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정된 지역(강동구 암사1동 일대 63만5000㎡, 성동구 성수1, 2가 일대 88만6560㎡, 성북구 장위1동 뉴타운 해제구역 31만8415㎡, 동작구 상도4동 일대 75만㎡, 서대문구 신촌동 일대 26만3000㎡)의 면면을 보니, 과연 그곳들에 정말로 ‘다시 살려내야만’ 할 절박함이 있는지, 공동체와 골목을 살리겠다는 취지에 적합한지 약간의 의구심이 생긴다. 14개 자치구 15개 사업이 응모했던 결과라는데, 공모기간은 불과 2개월이고, 심사에 불과 10일(현장평가 4일) 걸렸다는 것에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 ‘재생’이 기존의 마을 만들기나 낙후지역 정비, 지역 활성화의 방법과 무엇이 다르기에 굳이 ‘서울형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인지도 궁금하기 그지없다. 

정수장 내부의 물길들을 그대로 살리며 산책로로 조성하여 마치 고대의 유적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 진정한 재생은 시간을 담는 것

사실 서울에는 이미 성공적인 ‘재생’의 사례가 있다. 한강은 폭이 1㎞나 되는 무척 넓은 강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걸쳐 있는 다리는 제각기 개성 있는 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한남대교를 건널 때 보이는 호쾌한 풍경이 아주 좋고, 그에 못지않게 양화대교를 건널 때 보이는 풍경도 좋다. 그 다리를 건널 때 보이는 여의도 풍경과 합정동 근처에 접근할 때 절벽 위에 한 송이 꽃처럼 피어 있는 절두산 성당이 보이는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는데, 지하철 철교가 놓이면서 가로막은 방음벽으로 인해 보이지 않게 되어 못내 아쉽다. 그러나 그 대신 선유도 공원이 다리 중간에 생겨서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달래준다.

선유도 공원은 2002년에 개장했다. 선유도는 ‘신선이 노니는 섬’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멋진 풍광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원래는 섬이 아니고 한강의 남쪽에 붙어있는 땅이었고 그 끄트머리에 아름다운 봉우리가 솟아있어서 선유봉으로 불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현대를 거치며 홍수를 대비하는 한강 정비사업과 인천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해 토사를 반출시키는 바람에 땅이 깎여나가며 섬이 되었다. 선유라는 본래의 정체성과 섬이라는 나중에 생긴 땅의 모습이 합쳐진 기구한 장소인 셈이다. 

선유도로 향하는 보행교.
서울시는 선유도에 1978년부터 정수장을 건설하고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선유도는 신선 대신 물이 노니는 곳이 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에 용도가 폐기되고, 2년 동안 정비하여 공원으로 재생시켰다. 이곳은 그동안 서울시가 진행한 많은 재생 사업 중에서도 칭찬을 받을 만한 곳이다. 진정한 의미의 재생이 이곳에서 이루어졌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공원이 되었다.

선유도 공원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존 정수장의 껍질을 그대로 살린 것이 전부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살리고, 오랜 시간동안 고난을 겪은 땅을 자연이 다독이며 서서히 치유시켜 주는 곳이다. 공원의 구성은 한강전시장, 시간의 정원, 원형소극장, 카페테리아, 공원 안내소 등의 건물이 있는데, 정수장 내부의 물길들을 그대로 살리며 산책로로 조성하여 마치 고대의 유적을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특히 그 안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원래의 정수장에 있던 시설을 개조한 것이다. 송수펌프실은 한강전시실, 취수탑은 카페테리아, 급속 여과지는 공원 안내소, 그리고 침전지는 시간의 정원 등이 되었다. 특히 기둥만 남은 정수장 자리에 만들어진 시간의 정원은 낡은 콘크리트 기둥을 타고 오르는 덩굴식물이 주는 묘한 느낌이 그곳에 가는 사람에게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장소이다.

이 공간들은 1999년 현상설계를 거쳐 조경설계 서안㈜(정영선), ㈜건축사사무소 조성룡도시건축(조성룡), 다산컨설턴트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서울시 부시장이었던 강홍빈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짧은 시간에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장소에 대한 이해와 문화적인 안목을 기반으로 할 때 진정한 공간과 시간의 재생을 일구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되었다. 그런 방식의 재생을 통해 아주 오랜 시간 쌓여온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도시 재생이란 결국 역사와 삶의 흔적이 담긴 시간을 지켜내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는 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형태의 개발 혹은 파괴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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