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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이~'…시골 여유와 인심 싣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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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01 21:12:17 수정 : 2014-07-01 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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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 농어촌버스 진풍경
안내양 ‘오라이∼’ 추억이
“엄마, 어디 다녀오세요? 짐 이리 주세요, 무거울 텐데.” “자∼ 출발합니다. 꼭 잡으세요.”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 안. 여느 지방의 버스와 달리, 충남 태안군 농어촌 버스에 오르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진풍경이 펼쳐진다. 만원버스에 손님들을 밀어넣고 문을 탁탁 두드리며 ‘오라이∼’를 외치던 씩씩한 안내양이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지 20여년 만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충남 태안군 ‘오라이 버스’ 안내양 정화숙, 모은숙, 김선(위부터)씨가 버스에 올라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이들은 태안의 홍보대사로 자리 잡았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태안군은 2006년부터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노인들의 크고 작은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지역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안내양 제도를 도입했다. 추억이 물씬 풍기는 안내양 버스, 일명 ‘오라이 버스’가 4개 노선에서 운영되고 있다. 현재 3명의 안내양이 탑승한다. 

안내양 4개월차 막내인 김선씨가 승객에게 요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건네고 있다.
김선씨가 버스에 오르는 어르신을 부축하고 있다. 안내양은 노년층 승객들이 안전하게 타고 내리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버스안내양은 대부분 노년층인 시골 승객들이 안전하게 타고 내리게 돕는 것은 물론, 흔들리는 버스에서 승객들의 요금을 대신 받는 도우미 역할도 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어르신에게 달려가 짐을 번쩍 들어 버스에 올려주기도 한다. 장을 보거나 통원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시골 어르신들은 “무거운 짐을 들어줄 뿐 아니라 요금도 대신 받아주니 얼마나 편한지 몰러. 싹싹하게 인사도 잘하고 안부도 물어봐주니 너무 고맙지”라고 말한다. 안내양들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나는 어르신들이 친정 부모처럼 편하다며 ‘엄마’, ‘아버지’로 부른다.

모은숙씨가 테이프를 이용해 어르신 짐꾸러미에 손잡이를 만들고 있다.
김선씨가 종착지인 천리포 정거장에 내려 손님이 장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집까지 들어다 주고 있다.
갑자기 버스가 정차하자 안내양 김선(35)씨가 내려 어디론가 달려가더니 마늘 한 봉지를 들고 온다. “지금 한창 마늘 철이라 얻어왔다”며 웃는다. 종착지인 천리포에서는 차에서 내려 한 어르신의 짐을 집 앞까지 들어다 준다. 시골 버스의 여유와 인심을 느낄 수 있다.

안내양 생활 9년째인 정화숙씨가 버스에 탄 어르신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어르신들의 건강을 챙기고 말벗이 되는 것이 정씨의 장기다.
버스안내양 1호이자 3명 중 큰언니인 정화숙(48)씨는 9년째 안내양 생활을 하고 있다. 정씨는 노인 승객들의 말벗 역할도 한다. “아버지, 오늘은 약주 조금만 드세요”라며 농담 섞인 잔소리를 하는가 하면 승객들의 한숨 섞인 고민도 들어준다. 관광객들에게 지역 관광지를 소개하는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히 한다. 안내양 생활이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정화숙씨(오른쪽 세번째)가 종착지인 만대항에서 단골손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러 음식을 나눠 먹고 있다.
“처음엔 지금처럼 목소리도 크게 안 나오고 살갑게 어르신들을 대하기가 무척 힘들었죠.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니 지금은 딸이나 며느리처럼 대해주세요. 정년이 2년 남았는데 그때까지 열심히 할 겁니다.”

엄마, 아버지들은 챙겨온 간식거리를 안내양과 나눠 먹으면서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눈다. 오라이 버스는 ‘달리는 사랑방’이다.

태안=사진·글 남정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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