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박탈감 주는 현실 아쉬워 심사위원이 지원자에게 묻는다.
#심사위원 1: 자신을 소개해 보세요.
지원자A: 예. 저는 넉살 좋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연예인 로드매니저입니다. 제가 담당하는 연예인을 오빠처럼 따뜻하게 보살피면서도 아낌없는 사랑을 줄 예정입니다.
#심사위원 2: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성품도 좋아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 혹시 아버지는 뭐 하시나요.
지원자 A: 저희 아버지는 재벌입니다. 건설회사를 비롯하여….
#심사위원 전원: 됐습니다. 어떤 회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가 재벌이면 됐습니다. 주인공 자격을 충분히 갖췄습니다. 그럼 통과. 다음 분 자기 소개하세요.
지원자 B: 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대리입니다. 회사 동기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 친구와 남은 삶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만능스포츠맨이고,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살펴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심사위원 3: 잠깐, 부모님은 뭐 하시나요.
지원자 B: 작은 식당을 운영했으나 현재 몸이 좋지 않아 집에 계십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입니다.
#심사위원 전원: 훌륭하신 분인 듯하나 죄송합니다. 저희가 찾는 분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가상의 장면이고 실제 이런 오디션이 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이런 가상 오디션이 어디에선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요즘 남자 주인공의 필수요소는 일단 ‘재벌의 후계자’일 것이 돼 버렸다. 길 가다가 만난 사람과 투닥거리면서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면 백화점 후계자이고, 전생의 남자와 현생에서 다시금 사랑에 빠졌는데 역시나 그 현생의 남자는 재벌 2세이다. 재벌 2세 남자는 어느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존재가 돼 버렸다.
임윤선 변호사 |
그래도 단 한 가지 들러리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분야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존재를 그 누군가에게만은 특별한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것, 둔하기 짝이 없는 감성을 예술가의 감성으로 바꿔 주는 것, 그리하여 이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바꿔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러기에 나는 지위가 높든 낮든, 연봉이 높든 낮든, 그 누구든 간에 사랑만은 아름답고 뜨겁게 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좁더라도 편안한 내 집에서 기분이나 풀자고 TV를 켰는데 그마저도 드라마는 가진 것 많지 않은 사람을 또다시 배제시킨다.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지는 사회라고 하지만 이제는 사랑마저도 가격표가 부착된 기분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랑은 비싸게 팔려 각광받고, 어떤 사랑은 염가 할인을 해도 안 팔려 이월상품으로 넘겨지는 것 같다. 최소한 사랑에서만큼은 주인공이어야 하고, 사랑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 점 때문에 나는 근래 TV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신년을 맞이해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나도 드라마를 보며 소담히 미소짓고 싶다. 드라마에서 가진 것 적어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우리네 사람의 모습을 자주 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평범하다 하여 사랑까지 평범한 것은 아니다.
임윤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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