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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먹고 몸집 불린 ‘암흑의 시장’… 금융약자만 희생된다

관련이슈 벼랑끝 가계, 이대론 안된다

입력 : 2014-01-06 06:00:00 수정 : 2014-01-10 17: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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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도 감독도 없는 ‘NPL 시장’ 부실채권(NPL)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가계빚이 불어나는 가운데 경기불황 여파로 부실채권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다. 시장에서는 IMF 사태 이후 거세게 불었던 부실채권 광풍이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도 이 시장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진 게 없으며, 금융당국도 관리·감독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 사이 채무자는 채권이 은행에서 2금융권과 대부업 등으로 떠돌면서 불법·악성 추심에 시달린다. 또한 채권자가 수시로 바뀌면서 벼랑끝에 몰린 금융약자의 채무조정이나 구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시민단체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의 부실대출 책임 추궁 없이 단순히 채무자의 빚만 대부업체 등에 떠넘기는 NPL 시장을 방치하면서 금융약자 보호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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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L ‘대박 신화’ 거품 인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한 시중은행에서 채권매각관리팀 직원 셋이 퇴사 직후 NPL을 사고파는 대부업체를 차려 단기간에 50억원을 벌었다는 소문이 화제가 됐다. NPL 시장에선 공인회계사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NPL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부실채권 가치평가를 해주던 공인회계사와 은행 실무진이 직접 거래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은행권의 부실채권물량 중 70∼80%는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우리에프앤아이(우리F&I)에 매각된다. 유암코는 6개 시중은행이 출자한 자산관리회사이며 우리F&I는 우리금융그룹 자회사다. 이 두 회사는 100∼200개씩 한 묶음으로 사들인 채권을 다시 쪼개 저축은행, 캐피탈, 증권사 등 2차 매입업체에 넘긴다. 이 채권은 수차례 매각-재매각과정을 거쳐 신용정보회사, 대부업체 등으로 흘러간다. 이 시장이 알짜수익을 내자 최근에는 재벌통신사까지 신용정보회사를 만들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유암코의 경우 2012년 당기순이익이 993억원에 이르렀고, 지난해 우리금융그룹이 우리F&I 매각 방침을 밝히자 여러 업체가 수주 경쟁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IMF 때처럼 골드만삭스, 일본계 자금 등 해외자본까지 채권매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상한 거래, 가격도 들쑥날쑥

무엇보다 은행의 부실채권 매각이 자회사 혹은 출자회사에 매각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연구위원은 “유암코는 은행이 출자한 자산운용사이고 우리 F&I 역시우리금융 자회사여서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옮겨간 격”이라며 “정상적인 부실채권 매각이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농협이 민주당 이학영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선 이런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농협은 2011∼2013년 3분 동안 모두 6242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을 4306억원(액면가 69% 수준)에 팔았다. 그런데 이 매입회사 가운데 자회사인 농협자산관리회사와 농협이 15% 지분을 가진 유암코에 판 금액만 따로 떼 보면 액면가 대비 54.2%로 떨어진다. 또 농협자산관리만 떼서 보면 액면가 대비 실제 판매가 비율은 31.1%로 급락한다. 농협은 종종 591억원어치의 부실채권을 5억원, 919억원어치를 10억원이라는 ‘땡처리’ 수준으로 농협자산관리에 팔면서 밀어줬다.

김준하 에듀머니 사무국장은 “부실채권 매각 손실은 대손상각비용에서 충당하니 다른 소비자의 이자로 메우는 셈이고, 이미 장부에서 상각한 채권을 다시 팔아 수익을 얻는 불합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은행도 유암코도 어디도 결국 손해 보는 기관은 없는데 채무자는 여전히 빚을 갚아야 한다”며 “채무자만 제도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라고 했다.

◆시장 투명해져야… 직접 채무재조정 검토도 필요

당국이 규제를 하려 해도 NPL 시장 정보는 사실상 전혀 없다. 현재 확인 가능한 부분은 은행이 도매상격인 1차 자산관리회사(AMC)로 파는 경우 정도이며, 이후 거래물량이나 가격은 안갯속이다. 한 채권은 시장에서 25차례나 거래되기도 했다. 이처럼 채권자가 수시로 변경되며 대부업체와 개인사채업자에게 넘어가도 채무자는 미리 알 길이 없다. NPL 시장을 통해 채권이 떠돌수록 악성채권만 남게 되고, 악성채권을 사들인 대부업체는 이익을 얻기 위해 과도한 추심을 할 수밖에 없는 유인 구조를 형성한다. 추심업체는 비정규직 위임직 추심원들을 고용해 실적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가혹한 추심을 방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관계자는 “몸집에 비해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NPL시장을 정상화하려면 매각 대상·자산·관련 채무자 등의 정보를 금융감독 기관이 파악할 수 있도록 매각신고제와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채무자가 원치 않는 업체에 채권이 양도될 경우 반대할 수 있는 제도 보완 등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과 채무자 간 직접 재조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NPL시장에서 도매상들을 살리기 위해 헐값에 채권을 파는 게 채권 회수를 위한 조치라 볼 수 없다”며 “금융기관이 채무자와 직접 채무 재조정을 하게 하면 매각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회수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김예진·조병욱 기자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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