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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가계, 이대론 안된다] 전 화장품 대리점주 베이비부머의 날개없는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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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2 18:31:25 수정 : 2014-01-10 17: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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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실패로 빚 수렁, 갚아도 끝없는 나락… 재기는 꿈도 못꿔요” 2일 오전 9시. 남들은 하루를 시작할 시간이지만 최선영(55·가명)씨는 잠을 청할 준비를 한다. 그는 24시간을 근무하면 12시간을 쉬고 다시 24시간을 일하는 건물 경비원이다.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 달 140만원 남짓. 한때 잘나가는 화장품 대리점 사장이었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1년 봄, 최씨는 경기 고양시 번화가에 화장품 대리점을 열었다. 거래하던 H은행에서 창업보증재단을 통해 빌린 3000만원과 그동안 모아뒀던 돈으로 가게를 얻었다. 처음 몇 달은 꽤 많은 손님이 왔다. 10평 작은 가게였지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아들, 딸과 행복하게 사는 미래가 그려졌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본사에서는 ‘매장을 키워라’, ‘인테리어를 바꾸라’며 계속 사업 확장을 요구했다. 대기업의 ‘갑(甲)질’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정부의 단속도 없던 시절이었다. 최씨는 “혼자 일하던 가게에 종업원을 늘리고 물건을 더 들여놓으면서 대출은 금세 5000만원, 1억원으로 늘어났다”고 회고했다.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담보로 잡혔다.

그 많던 손님도 어느 순간 줄었고, 재고만 쌓여갔다. 이자는 수천만원대로 불어났고 갚을 도리가 없었다. 최씨는 눈물을 머금고 가게 문을 닫았다. 담보로 잡혔던 집은 이미 경매로 넘어간 뒤였다. 최씨 가족은 거리로 내몰렸다. 최씨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60만원인 허름한 빌라를 얻었다.

어렵사리 법원에서 개인회생 인가 판정을 받았지만 최저생계비로 5년을 버티기는 힘들었다. 2011년 7월부터 5차례에 걸쳐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나머지 소득을 모두 빚을 갚는 데 썼다. 남은 돈으로는 대학생이 된 자식들의 학비와 4인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개인회생은 폐지됐고 다시 빚 독촉이 시작됐다. 현재 최씨는 다시 개인파산을 신청한 상태다. 한 번의 사업 실패로 최씨 가족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아직까지 그의 인생에 패자부활전은 없다.

최씨는 “자녀 둘도 2000만원씩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면서 자식들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한번 사업에 실패한 죄는 있지만 우리 가족들은 무슨 죄가 있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때 금융피해자단체의 상담실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북한 주민보다 못한 삶을 사는 우리 같은 사람이 많다”고도 했다. 그는 그러나 “사람들에게 나도 죽고 싶었지만 죽으면 안 된다. 죽으면 그 빚이 부인과 자식에게 간다. 끝까지 살아서 견뎌내자고 늘 말했다”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취재팀이 개인회생 신청자 479명을 분석한 결과 최씨와 같은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는 23.4%인 112명이었고 이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50명이 자영업 실패경험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5년(2008∼2012년)간 개인회생을 신청했다가 최씨처럼 구제받지 못한 사람은 신청자 3명 가운데 1명꼴로 나타났다.

특별기획취재팀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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