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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가계, 이대론 안된다] 개인회생 신청 직업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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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2 18:58:24 수정 : 2014-01-10 17: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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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字 전문직도 망하는 시대… 파산위험 ‘안전지대’ 없다
가계파산위험은 어느 직업도 피해갈 수 없었다. 경기에 민감한 보험 등 금융·건설업 종사자들이 빚더미에 올랐고 공무원과 공기업 분야도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의사와 한의사, 회계사 등 고소득 전문직 역시 무리한 사업확장이 화근으로 작용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취재팀이 비교적 수입이 많거나 안정적인 보험설계사·은행원 등 금융·건설업, 공무원 및 공기업, 의사·회계사 등 전문직, 대기업 종사자 등을 추려낸 결과 모두 141명에 이르렀다. 이는 전체 479명의 29%에 달하는 수준이다. 경기에 민감하든 둔감하든 직업군 전체가 언제든지 파산의 위험에 노출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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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잔혹사

학사장교 출신인 이모(36·동작구)씨는 7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2008년 4월 한 생명보험사에 입사했다. 이씨는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밤 11시까지 일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업실적은 주위에서 부러워할 정도로 좋았다. 외국보험사로부터 팀 영업 관리를 맡아달라는 스카우트 제의가 오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직 후 전 직장에서 체결했던 보험계약이 무더기로 해약되면서 무려 9000만원을 돌려 달라는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된 것. 이후에도 한 차례 보험사를 옮기거나 발광다이오드(LED)사업도 벌였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재차 보험사 두 군데에 차례로 취직해 영업을 계속했으나 빚은 1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그나마 영업실적도 나빠 보험사로부터 강제 퇴직당하고 말았다. 그는 현재 중국 음식점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이씨처럼 가혹한 보험영업에 시달린다는 사연이 빗발쳤다. 보험설계사인 김모(강서구·40대)씨는 “처음 실적이 좋은 것이 오히려 화근이었다”면서 “실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지점장의 독촉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장계약이나 보험료 대납을 해가면서 빚이 1억원 이상 불어났다”고 덧붙였다. 최모(40대·여)씨도 “보험설계라는 게 연고가 바닥나면 1년 이상 고전하다 2년 내 그만둔다는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모(성북구·40대·여)씨 역시 “보험계약이 줄거나 불완전계약으로 처리되면서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면서 “(보험영업에 따른) 환수금과 영업비로 많은 지출과 생활고에 시달려 개인회생 신청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보험설계사를 모집하는 관리자나 지점장도 처지가 비슷했다. A생명사의 테헤란로 지점장은 “잘나가는 설계사를 모집하려면 수당으로 1000만원을 줘야 할 때도 있다”면서 “이 때문에 이자가 연 20%에서 50%에 달하는 개인사채나 대부업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은행원이던 이모(46)씨는 남의 명의로 회사 돈을 빌려 벌인 사업이 실패하면서 곤욕을 치렀다. 이씨는 은행에서 해고당했을 뿐 아니라 배임죄로 처벌돼 30개월간 수감됐다. 가족과는 연락이 두절됐다. 현재 그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설계사와 모집인 등 보험관련 직업을 가진 이는 22명으로 단일 업종으로는 가장 많았다. 이들의 빚은 적게는 4756만원에서 많게는 7억4335만원에 이르렀다.

◆가시지 않은 IMF망령과 건설경기 한파

명문 S대 출신인 박모(62)씨 인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박씨가 다니던 한보철강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부도를 내면서 불행은 시작됐다. 경기불황이 길어지면서 박씨의 실직은 장기화됐고 대학선배와 시작했던 사업도 실패했다. 급기야 그는 2003년 카드 빚을 내 부동산중개사무소를 개업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렸으나 3년 후 아내와 함께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시절 아이들도 학자금대출 3000만원을 받아 간신히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가족 모두가 빚의 덫에 갇힌 셈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부동산경기 한파까지 이어지면서 부동산 중개건수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부동산중개사무소도 2012년 말 폐업했다. 박씨는 “당시 사무실임대료가 1년 정도 밀렸고 세금과 공과금도 연체돼 쫓겨나다시피 사무실을 정리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80만원 남짓한 국민연금으로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강모(광진구·50대)씨도 유사한 경우다. 강씨는 1995년 친척의 대출채무에 보증을 선 데 이어 IMF 이후 직장인 H전산회사에서 정리해고 당했다. 그는 “오랫동안 실직상태를 이어오다 2008년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부동산경기침체로 너무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개인회생 신청자 중 부동산중개사, 건설사 직원 및 건축사 등 건설관련 종사자 34명을 추적한 결과 1인당 월수입은 200만9698원으로 평균치(209만2765원)를 밑돌았다. 이에 비해 총부채 규모는 2억6899만원으로 평균치(2억5045만원)를 웃돌았다. 건설한파가 중산층의 파산을 야기하는 주범 중 하나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주식·도박의 덫에 걸린 공무원들

박봉에 시달린다던 공무원들은 의외로 한탕주의의 유혹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공무원 오모(은평구·40대)씨는 주식으로 패가망신한 사례다. 그는 2003년 근무지에서 자금을 관리하다 카드 빚을 얻어 주식에 손을 댔다. 불과 3년 만에 오씨의 빚은 1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가족이 나서 이 빚을 갚아줬지만 끝내 주식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는 10년간 제2금융권과 사채업자에게서 빚을 내 주식투자를 반복해 불어난 빚이 4억원에 육박했다.

경찰공무원 김모(40대)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는 이혼 후 전처에게 준 양육비와 사업 실패로 쌓인 빚을 갚으려고 사채까지 내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결국 3억원가량의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에 직면했다. 공기업에 근무 중인 서모(30대)씨 역시 2006년 입사 후 6년간 빚을 내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1억1000만원가량의 빚을 떠안게 됐다. 교정공무원인 정모(40대)씨는 2003년 아파트담보대출를 받아 주식 투자에 나섰다 실패한 데 이어 8년 후에는 경마장까지 출입했다. 결국 그에게는 2억원 이상의 채무가 남았다.

이밖에 법원직공무원 권모씨는 생계 능력이 없는 부친과 동생을 부양하다 빚 수렁에 빠졌다. 그는 먼저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았다가 이를 갚기 위해 캐피털 등을 찾으면서 월 500만원 정도의 원금과 이자 비용이 필요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공무원연금공단에서 대출을 받고 아파트를 처분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행정공무원 도모씨는 고향 농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농지법 위반, 소송 등으로 계약금 7000만원을 떼인 데다 알코올의존증인 동생 가족과 부모까지 부양하면서 채무가 급증했다.

◆고소득 전문직도 안심 못해

유명 대학병원에서 교수로 일할 정도로 촉망받던 의사 유모(송파구·60대)씨는 2000년부터 강동구에서 개인병원을 개업하면서 불운이 시작됐다. 개업 때 시설자금이 예상외로 많이 들었고 빚으로 운영자금을 충당했기 때문이었다. 10여년이 흘러 채무규모는 5억원 가까이 불어나게 돼 병원수입으로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치과의사인 문모(44)씨도 2005년 병원이전 때 과도한 개업자금과 운영자금 차입 탓에 자금난에 몰려 유씨와 같은 신세가 됐다.

연매출 17억원대의 대형약국을 운영 중인 채모씨는 엔화대출로 화를 당했다. 채씨는 2006년 H은행에서 변액보험가입을 조건으로 13억원가량의 엔화대출을 저리로 받았다. 엔화대출금은 환차손이 눈덩이처럼 불어 현재 원금만 따져 20억원가량으로 늘었고 이자도 덩달아 불어났다. 게다가 인근에 약국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채씨는 결국 법원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 경쟁이 갈수록 격해지는 한의사들 사이에서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특별기획취재팀 investigativ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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