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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59〉 오씨(吳氏),해주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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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15 22:01:55      수정 : 2013-10-16 01:14:28
◆오씨(吳氏)는

많은 성씨처럼 우리나라 토속 성씨가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성씨로 여겨진다. 오씨의 유래는 오월동주라는 고사성어에서도 잘 나타나듯이 중국 양자강 부근의 주나라 제후국이었던 오(吳)나라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월나라 왕 구천과 견원지간이 되어 싸웠던 사람으로 오나라의 부차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의 손자 루양이 천자로부터 오씨 성을 하사 받아 오씨가 생겨났다고 전한다. 그 외 중국에는 오나라뿐 아니라 초나라에도 오(吳)씨가 있는 등, 3가지 계통의 오(吳)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오씨는 신라 지증왕(500년) 때 중국에서 신라로 입국했다가 중국으로 귀환한 오첨을 도시조로 삼는 파가 있으며, 이를 부인하고 송나라의 대학사로서 984년(고려 성종 3년) 고려로 귀화한 오인유가 시조라고 주장하는 파가 있다.

오씨는 조선성씨통보에 210본까지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오씨는 해주, 동복, 보성오씨에서 분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존하는 오씨 본관들은 해주(海州), 동복(同福), 보성(寶城), 고창(高敞), 두원(荳原), 나주(羅州), 함평(咸平), 울산(蔚山), 낙안(樂安), 평해(平海), 군위(軍威), 의성(義城), 장흥(長興), 함양(咸陽), 화순(和順) 등이다.

또 오씨 대동보에 따르면, 오첨을 도시조로 하는 해주오씨에서 울산, 낙안, 고창, 함평, 나주, 평해 등이 분적되었고, 동복오씨에서는 군위오씨가, 보성오씨에서는 장흥, 두원, 화순, 함양 오씨가 분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19명, 상신 4명, 대제학 3명, 개국공신 2명을 비롯하여 공신 8명, 청백리 3명을 배출했는데, 그중 해주오씨가 상신 2명, 대제학 3명, 공신 2명, 청백리 1명을 배출하여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 외에 동복오씨, 나주오씨, 보성오씨 등에서 많은 인물이 나왔다. 현재 오씨는 해주오씨, 보성오씨, 동복오씨의 3본이 전체 오씨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2000년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70만690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왕건과 오씨부인 장화왕후가 만났다는 전설이 깃든 나주의 완사천. 우물가에 있던 오씨부인이 물을 달라던 왕건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을 건넸고, 오씨부인의 지혜를 높이 산 왕건이 부인으로 맞았다는 전설이다. 후에 오씨부인은 장화왕후가 되고, 그녀의 아들이 고려 2대 임금인 혜종이다.
◆해주오씨(海州吳氏)는

해주오씨에는 두 파가 있다. 하나는 신라 지증왕 때 도래했다고 전해지는 오첨을 도시조로 삼는 해주오씨가 있다. 이와는 달리 해주오씨의 시조는 고려 성종 때 중국에서 건너온 학자인 오인유이며, 그 선계를 고증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파가 있다.

오첨을 오씨의 도시조로 삼고 있는 오씨 대종회에서는 도시조인 오첨이 신라 지증왕 때 중국에서 건너왔다고 전하고 있다. 처음엔 지방 토호에게 붙잡혀 재산을 다 빼앗겼지만, 나중에 조정에서 알게 되어 보살펴주었다고 한다. 김종의 딸과 결혼한 후, 함양에서 살다가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전하고 있다. 이때 그의 둘째 아들 오응(吳膺)은 나이가 어려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함양에서 살게 되어 오씨의 뿌리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 그 후예이자 나주의 토호였던 오다련(吳多憐)이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의 딸이 혜종의 어머니이자 왕건의 둘째 부인인 장화왕후라는 것이다.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장화왕후가 왕건에게 물을 떠 주면서 버드나무 잎을 띄어서 천천히 마시게 했다는 장화왕후에 대한 전설은 지금도 많이 회자되고 있다. 

조선시대 10대 명재상으로 알려진 오윤겸의 묘
그 뒤 오응의 12대손 오광우(吳光佑)가 중국에 들어갔었는데, 그의 현손인 오연총(吳延寵)이 문종 때 다시 고려에 건너와 정착했으므로 오연총이 오씨의 중시조가 된다. 오연총은 윤관과 함께 부원수로 북변의 여진을 토벌하였으며, 이부, 예부, 병부상서를 역임하였다.

오연총의 5세손인 오수권(吳守權)은 오현보(吳賢輔), 오현좌(吳賢佐), 오현필(吳賢弼)이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 이들 삼형제는 고려를 침입해 온 거란군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각각 해주군(海州君), 동복군(同福君), 보성군(寶城君)에 봉해져, 해주오씨, 동복오씨, 보성오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 후 울산, 낙안, 고창, 함평, 나주, 평해, 군위, 장흥, 두원, 화순, 함양 오씨 등이 분적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시조가 오인유라고 주장하는 해주오씨(경파) 측은 해주오씨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의 학사로 이름이 높았던 오인유(吳仁裕)이며, 그는 성종 때 고려로 건너와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내고 해주에 정착하였기에 후손들이 본관을 해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오첨이 오씨의 도시조라는 것에 대해선 고증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 후 오연총(吳延寵)이 고려 예종 때 윤관(尹瓘)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 및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다는 것이다.

오인유의 후손은 7세를 전후로 20여개의 파로 나뉘었다. 8세 오반(吳潘)의 후손은 찬성공파(贊成公派), 9세 오중수(吳仲守)의 후손은 사복시정공파(司僕侍正公派), 9세 오희(吳僖)의 후손은 양정공파(陽亭公派), 9세 오처권(吳處權)의 후손은 용강공파(龍岡公派), 9세 오생운(吳生韻)의 후손은 생원공파(生員公派)를 이루었다. 이외에도 묘제공파(墓齊公派), 지군사공파(知郡事公派), 사복시랑공파(司僕侍郞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사인공파(舍人公派),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장춘공파(長春公派), 해성부원군파(海城府院君派), 판도정랑공파(版圖正郞公派), 징사공파(徵士公派)로 분파하였다. 그 이후 14세손 대에서 다시 여러 파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해주오씨의 두 파는 뿌리도, 시조도, 족보도 다르게 쓰고 있으며, 종친회도 다르게 운영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이 같은 시조의 같은 동손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해주오씨는 총 13만1399가구에 42만2735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주오씨는 족보와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는데, 용인 해주오씨 시조단은 오인유를 시조로하는 경파의 시조단이다.
◆해주오씨의 연혁과 인물

해주오씨의 시조 오현보(吳賢輔)는 오씨(吳氏)의 도시조(都始祖)인 오첨의 24세손이자, 오씨 중시조인 문양공 오연총의 6세손으로 오수권의 아들이다. 그는 고려 고종 3년에 두 아우 오현좌, 오현필과 함께 거란군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워 해주군(海州君)에 봉해져, 후손들이 해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오현보의 아우였던 오현좌는 동복오씨의 시조가 되고, 오현필은 보성오씨의 시조가 된다.

오현봉의 관직은 낭장으로 명주(지금의 강릉) 민란을 진압하는 공을 세우고 상장군에 오른 뒤, 중서문하성의 참지정사에 이르렀다. 그를 시조로 하는 해주오씨는 오씨(吳氏) 문중에서 가장 번성한 가문이 되었는데, 조선조에서 상신 2명, 대제학 3명, 호당 3명, 청백리 1명, 공신 3명, 장신 2명, 문과 급제자 84명을 배출하였다. 특히 인조반정을 계기로 중앙정계에 많이 진출하였다.

한편 오인유(吳仁裕)를 시조로 하는 해주오씨는 문양공 오연총이 고려 예종 2년 윤관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하는데 공을 세우고, 벼슬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또 문양공 오연총과 같은 이름의 오연총(吳延寵)이 있다. 그는 공민왕 때 판삼사(判三司)를 지냈고, 아들 오반은 좌찬성(佐贊成)에 올랐다. 오강(吳綱)은 국자감진사(國子監進士)를 역임했다. 공양왕 때는 오광정(吳光庭)이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오성식(吳成式)이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냈다.

중종 때 이조전서(吏曹典書) 오결(吳潔), 선조 때 대문장가로 꼽혔던 오상(吳祥)은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남원성을 사수했던 전라방어사 겸 순천부사 오응정(吳應鼎)이 있으며, 전라,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한 오정방(吳定邦), 성리학로 이름 높은 오천민(吳天民) 등이 조선시대 전반기 인물들이다. 

대원수 윤관, 부원수 오연총이 9성을 쌓고, 함북 종성에서 700리 떨어진 신춘령에 고려영토라는 경계비를 세웠는데, 이를 조선후기에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이 북관유적도첩이다. 이로 인해 윤관의 동북 9성이 함흥 근방뿐 아니라 연해주까지 뻗어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오응정 장군 일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국난을 맞아 3대에 걸쳐 순국했기 때문에 오씨삼세오충(吳氏三世五忠)이라는 별호가 붙었다. 즉 오응정과 그의 아들 오욱(吳稶), 오동량(吳東亮)이 남원성 방어에서 전사했으며, 오응정의 3남인 오직(吳稷)은 광해군 때 강홍립을 따라 청나라를 정벌하다가 부차 싸움에서 전사했고, 그의 큰손자 오방언(吳邦彦)은 병자호란 때 송파 샛강에서 청군(靑軍)과 싸우다 전사했다.

해주오씨는 인조반정 후에 중앙정계에서 수많은 명신들을 배출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영의정에 오른 오윤겸(吳允謙)이다. 그는 선조 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시강원문학(侍講院文學) 이조좌랑(吏曹佐郞), 부교리(副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스승이었던 성혼(成渾)이 모함을 받아 사직하기도 했고, 정인홍(鄭仁弘)을 탄핵하다가 좌천되기도 하였다.

광해군 9년에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포로 320명을 데리고 왔다. 그 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다시 탄핵받았으나, 인조반정 후 서인(西人)이 분열될 때 노서(老西)의 영수가 되어 대사헌 이조판서를 지냈다. 이괄(李适)의 난 때는 왕을 공주에 호종하였으며, 정묘호란에는 왕세자와 함께 강화에 피난하였다. 돌아와서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오윤겸의 후손 중에는 조카 오달제(吳達濟)가 부교리를, 손자 오도일(吳道一)이 대제학과 병조판서를, 현손 오명항(吳命恒)이 우의정을 지냈다. 오달제는 병자호란 때 척화삼학사의 한사람으로 윤집(尹集), 홍익한(洪翼漢) 등과 함께 처형당했다.

오도일은 주청부사(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문장이 뛰어났다. 오명항은 영조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기용되었고,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이 되고 해은부원군에 봉해졌으며, 효성이 남달라 효자정문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 밖에 숙종 때 형조판서를 역임한 오두인(吳斗寅), 공주의 부마로 서예가로 이름났던 오태주(吳泰周), 부자가 나란히 대제학에 오른 오원(吳援)과 그의 아들 오재순(吳載純)이 있다. 

오윤겸의 아버지 오희문은 임진왜란 당시의 사회상을 세밀하게 묘사한 쇄미록을 집필했다.
◆해주오씨 근현대 인물

구한말 국난이 닥치자, ‘삼세오충’의 충혼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해주오씨 문중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의병장으로 오인수(吳寅秀)와 오상열(吳相烈)이 있으며, 일신회와 고려혁명당을 조직, 무장항일운동을 벌이다 붙잡혀 옥사한 오동진(吳東振)이 있고,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인 오세창(吳世昌)과 그의 아버지이자 김옥균, 박영효 등을 지도하여 개화파를 형성한 오경석이 있고, 상해임시정부 의정원의원 등을 지낸 오익표(吳翼杓)가 있다. 그 외 한국의학의 개척자였던 오긍선(吳兢善, 세브란스의전 교장)이 있고, 괴짜 시인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도 해주오씨 인물들이다.

해방 후에도 해주오씨 문중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었는데, 정관계에서는 오화영, 오성환, 오재도, 오세응, 오홍석(전 국회의원), 오위영, 오재영(민의원), 오한영(전 보사부장관), 오정근(국세청장), 오천석(철학박사, 전 문교부장관), 오치성(전 내무부장관), 오정수(전 상공부장관), 오택근(전 법무부장관), 오경환(전 해군참모총장), 오병선(전 서울고법부장판사) 등이 있고, 언론계에는 오종식(전 서울신문사장)이 있다.

그 외 재계에서는 오태환(한국종합기계사장), 오세정(동산토건사장), 오세중(세방회장)이 있고, 학계에서는 오국근(동국대교수), 오상락(서울대교수), 오준석(아주대교수), 오세욱(동아대교수), 오세도(충남대교수), 오계칠(서강대교수), 오진환(한양대교수) 등이 있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운영위원장 ksh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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