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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새는 혈세, 구멍 뚫린 감시망] “부채 관리 못하는 지자체라면 정부가 자치권 인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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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04 02:02:34 수정 : 2013-10-04 08: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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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념 前 경제부총리
자체 세입으로 공무원 봉급도 못 줘, 시·도·구·군 다단계 구조 수술해야
증세없는 복지 하느님도 해결 못해, 정부 스스로 살림 절감해 국민 설득
나라살림을 바라보는 경제원로의 수심은 깊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예산낭비가 굉장히 많다”면서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위기 때 우리가 건전재정의 힘으로 버틴 점을 상기시켰다. 처방은 단호했다. 진 전 부총리는 “지방자치단체가 부채를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중앙정부가)자치권을 인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과거에는 예산담당 공무원들이 자기 목을 걸고 재정을 지켰는데 요즈음 후배들은 그런 ‘스피릿’(정신)이 없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내 돈처럼 아낀다는 정신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공동대표(전 건설교통부 장관)는 더 강렬했다. 최 대표는 “예산낭비는 잡초와 같다”면서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끊임없이 채찍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봐야 하는 감사원의 본업이 수사기관처럼 비리를 캐내는 쪽으로 왜곡돼 있다”면서 “감사원은 강직한 사정기관의 이미지를 벗고 회계감사와 경영마인드로 돈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 전 부총리와 최 대표의 인터뷰는 이번 탐사 취재가 한창 무르익던 무렵인 지난달 16일, 11일 이뤄졌다. 두 인터뷰는 모두 한 시간 남짓 진행됐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
―현재 재정 건전화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나. 유럽과 같은 재정위기를 걱정 안 해도 될는지.

“지금 직접적인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이라고 말하지만 공기업 부채까지 합치면 상당하다. 공기업들이 4대강이니 뭐니 해서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다. 동시에 증가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우선 재정을 제대로 쓰고 있는 건지, 예산낭비는 어디서 생긴 것인지 철저한 점검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도 (유럽처럼) 재정건전성이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다. 노령사회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도 심각한 상황인 듯하다.

“지자체가 일정한 부채관리 수준을 정해놓고, 그걸 넘는 부채를 관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메스를 가해줘야 한다. 지자체 스스로 메스를 가할 순 없는 일이다. 정부가 자치권을 인수해야 한다. 자체 세입으로 공무원 봉급도 못 주는 곳이 반절이나 된다. 시골 인구는 많이 줄었는데 공무원 수는 늘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어려운 과제지만 시, 도, 구, 군의 다단계구조를 수술해야 한다. 12년 전 우리가 구상한 게 미국의 주처럼 우리나라도 한 50개 정도의 광역지방자치 단체로 묶어야겠다는 것이다. 지자체도 규모의 경제를 유지해야 한다.”

―박근혜정부 들어 복지공약 재원을 놓고 논쟁이 뜨겁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증세 안 할 수 있겠나. 사실 지금 다 하는 셈이다. 세목을 복지세 식으로 도입해서 세입을 올리는 건 적극적 증세 정책이고 소득공제를 세액 공제로 바꾸는 것과 같은 조치도 소극적 증세다. 증세 없는 복지는 하느님이 와도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낭비는 어떤지 설명부터 하고 어떤 복지를 위해 같이 나아가자고 호소해야 한다. 약속한 복지를 5년 내 달성하기 위해서 세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 적정한 때에 국민에게 진솔하게 말해야 한다. 정부 스스로 뼈를 깎는 각오로 살림을 절감해야 국민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복지비전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리 문화와 정서, 국민의식에 맞는 복지로 가야 한다. 우리는 복지와 성장잠재력을 함께 그려야 한다. 출산이나 보육처럼 미래를 위한 투자이면서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분야는 보편적 복지로 가고 반값등록금이나 복지의료 등 나머지는 선별적 복지가 맞다. 우리는 향후 10년간 국민부담을 봐가면서 어떤 복지부터 어느 단계부터 갈 것인지 프로그램을 짜야 한다.”

―예산낭비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제재조치도 실효가 적다는 비판이 많다.

“가장 우선하는 문제는 예산 담당자의 자세다. 과거엔 예산담당 공무원들이 자기 목을 걸고 일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재정개혁의 일환으로 제로베이스 제도를 도입했을 때 국방부 장성들이 권총을 차고 예산실을 찾아 시위를 했다. 검찰과 경찰은 판공비 예산이 조정되자 석 달 동안 (예산담당자를) 뒷조사하기도 했다. 그럴 때에도 (건전) 재정을 지켰다. 요즘은 후배들이 그런 ‘스피릿’(정신)이 없다. 큰 걱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돈처럼 아낀다는 정신과 용기가 필요하다. (경제)논리와 사업효과가 분명하지 않으면 ‘노’라고 분명히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규율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부총리는 그 정도 맷집이 있을까.

“그건 노코멘트.”

진념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달 16일 강남 파이낸스빌딩 삼정KPMG 사무실에서 예산낭비와 재정건전성 문제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진 전 부총리는 “요새(기업에) 국세청이 다녀간 데 이어 관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번갈아 조사에 나서면서 불편한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전방위 세수확보전에 돌입하면서 기업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일자리를 만드는 건 기업이지 정부가 아니다”면서 일자리창출정책의 허실을 꼬집기도 했다.
김범준 기자
―평소 예산실명제를 주장한 것으로 아는데.


“언제 누가 이 예산을 계산했는지 적시하는 실명제는 상당히 도움이 될 거다. 참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시 재정이 엉망인데 그 주범인 안상수 전 시장이 새누리당 가계부채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나는 이게 완전히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금액 이상, 중요 프로젝트에는 실명제로 책임성을 높여주는 게 필요하다. 가령 용인 경전철도 어느 시장 시절 타당성 조사가 시작됐는지 밝혀서 (해당 공무원은) 최소한 공직생활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예산낭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활동을 평가한다면.

“추궁을 잘하든가 제재를 잘하거나 컨설팅을 잘해야 하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특별기획취재팀=주춘렬(팀장)·나기천·김예진·조병욱 기자 investigative@segye.com

■진념 전 경제부총리 약력=▲1940년 전북 부안 출생 ▲전주고 서울대 상과대 졸업 ▲행정고시(14회),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관, 재무부 차관, 동력자원부 장관, 노동부 장관, 기획예산처 장관, 재정경제부 장관 겸 부총리, 전북대학교 석좌교수, 삼정KPMG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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