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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당신의 오늘 하루는 몇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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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9-06 21:21:13 수정 : 2013-09-06 23: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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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체 차·불만족스런 생방송에 짜증
강가 아름다움·이웃 친절에 ‘빙그레’
출근 길, 좌회전 전용 차선에서 신호를 5분째 기다리고 있다. 신호가 바뀌고 좌회전하려는 찰나 내 앞차가 은근슬쩍 오른쪽 깜박이를 켜더니 직진 차선에 차 머리를 우겨넣고 엉덩이는 여전히 좌회전 차선에 남겨 놓았다. 아침부터 화가 치민다.

11시 재판을 가기 위해 사무실을 출발했다. 재판이 끝나고 방송국으로 곧장 갈 계획이었다. 법정 앞에서 의뢰인이 날 보자마자 전화를 왜 안 받느냐고 묻는다. 아차차, 전화기를 사무실에 두고 왔다. 안 그래도 시간이 빠듯한데 다시 사무실을 들르게 생겼다. 헐레벌떡 방송국으로 달려와 생방송을 마쳤다. 방송이 영 만족스럽지 못했다. 방송의 진행 방향에 대해 제작진과 이견이 발생했고, 서로 감정도 조금 상했던 것 같다.

드디어 집에 왔으나 짜증과 함께 외로움도 패키지로 따라붙었다. 그래서 나의 위안처 강가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강가로 가야 하는 길 건너 횡단보도에는 과일 트럭이 늘 정차해 있었다. 그때 맹인 한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횡단보도를 찾더니, 그만 트럭과 부딪칠 뻔했다. 그 순간 과일 아저씨가 순식간에 그 맹인의 팔을 잡고, 싫은 기색 하나 없이 횡단보도로 안내해 주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얼굴에 오늘의 첫 미소가 생겼다.

강가에 인접할 즈음, “잠깐만요. 지나갈게요” 하는 명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이제 초등학생이나 됐을까 싶은 어린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한 말이다. 아이의 사려 깊은 말 한마디에 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임윤선 변호사
드디어 강가다. 아, 바람이 날 명주이불처럼 포근히 감싸준다. 하루종일 동동거리고 다닐 때는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이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름 모를 풀이 여름 내내 훌쩍 자란 채 바람에 한없이 흔들린다. 나는 짐짓 레드카펫 위의 스타인 양 풀에 손을 뻗어 악수한다. 햇살을 반사하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잎사귀가 싱그럽다. 어느 새 노란 가을빛을 품고 있는데, 그 어떤 샹들리에보다도 아름답다. 햇빛을 비늘처럼 반사시키는 강물은 어찌 보면 금빛이고 어찌 보면 은빛이다. 강에 여신이 사나보다. 잔뜩 쪼그라진 마음이 서서히 이완되더니 심호흡도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나는 위안을 얻었다. 내 이웃이 보여준 친절과 강가의 자연이 준 아름다움 덕에 말이다.

나는 오늘 하루도 ‘흑자’를 냈다. 내게 위안을 준 아름다움이란 해외여행을 가거나 특급호텔에서 지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곳곳에 당연한 듯 존재해 왔다. 걸작이라 불리는 예술작품이 표현한 아름다움을 보자. 그것은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다. 반 고흐는 해바라기의 강렬한 노란빛에 끌렸고, 클로드 모네는 언덕 위에서 양산을 쓰고 서 있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사진작가 김영갑은 오름 위에 부는 바람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아름다움의 소재는 거장에게나 우리에게나 공평하게 존재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느낄 수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만 존재한다. 그들과 같이 섬세하게 혹은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재주가 없는 것은 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느끼는 것만은 가능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한 가난한 시인은 이 세상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도 하지 않았던가.

헤르만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 그 능력은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이다. 그것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찬사를 받지도 못하며 돈도 들지 않는다. 고개를 높이 들어라.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로 덮인 정원의 담장, 멋진 개 한 마리, 떼를 지어가는 어린아이,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을 놓치지 말자”고.

임윤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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