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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 돌풍 주역 한정석 작가

입력 : 2013-08-06 20:58:10 수정 : 2013-10-02 09: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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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 상징 여신 통해 이해·공감의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지난달 30일, 서울 대학로의 아트홀 씨어터.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계셔’(여신님) 매표소 앞으로 관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평일인데도 20∼30대 여성 중심의 꽤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다. 공연 분위기도 꽤 좋았다. 뮤지컬의 ‘웃음 코드’에 관객은 호의적이었다. 배우와 관객이 섞일 때는 공연장이 시끌벅적했다. 여신님이 요즘 가장 주목받는 뮤지컬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빈말은 아니었다. 여신님의 돌풍은 특정 작품의 흥행을 뛰어넘는 복합적인 의미가 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중심의 시장에서 창작 뮤지컬 기세를 보여줬다. 실력 있는 새내기 작가와 연출자, 작곡가를 발굴해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 성공을 일궜다는 점이 큰 소득이다. ‘시스템의 승리’라고 할 만한 부분이다. 한정석(30) 작가가 들려준 여신님의 탄생과 성장, 성공 과정은 창작자의 노력과 재능이 이를 뒷받침해주는 시스템과 ‘행복하게’ 결합한 사례로 보기에 충분했다


“기본적인 구상은 5년 전에 잡혔죠. 본격적으로 작업을 한 건 대학을 졸업한 3년 전부터 시작했고요. 원래는 수용소를 배경으로 설정했었습니다.”

여신님은 한국전쟁 중 무인도에 갇혀 반목하던 남북한 병사들이 여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정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여신이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딸, 과부가 된 동네누나, 기생이 된 여동생, 노모 등으로 표현한 것이 독특하다. 설정상 영화로 큰 성공을 거뒀던 ‘웰컴 투 동막골’이나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상시키는 면이 많다.

“웰컴 투 동막골뿐 아니라 전쟁과 관련된 영화, 책을 두루 참고했습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어느 한쪽을 악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고요. 화합과 희망을 상징하는 여신이란 존재를 통해 이해와 공감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3년 동안 여신님 작업에 올인했다고 봐야죠. 다른 걸 못했으니 수입도 거의 없다시피 했고요.”

이때까지 여신님은 신출내기 창작자의 구상에 머물러 있었다. 작곡과 연출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같이 해보자”는 의기투합은 있었지만 한 작가 스스로 “농담 비슷하게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 의견을 나누는 수준이었다”고 말하는 정도였다.

구상이 가능성으로 발전한 것은 2011년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에 응모하면서였다. 창작 뮤지컬을 지원하는 이 프로그램에 당선되면서 여신님은 ‘리딩 공연’을 할 수 있게 된다. ‘초짜’인 한 작가는 이때 뮤지컬이 실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자신의 작품이 어디가 어떻게 부족한지를 프로들의 도움과 조언을 통해 배웠다.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졌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소극장에서 다룰 때 임팩트가 있을까, 여신이라는 캐릭터를 관객들이 받아들일까, 등장인물 각각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할 때 지루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많은 지적을 받았죠. 한편으로는 좋은 스태프의 도움을 받고, 배우들을 소개받았기 때문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시스템을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보통의 경우 제작사나 극단에 들어가 ‘맨 땅에 헤딩하듯’ 부딪치며 체험해야 할 일을 체계적인 도움을 받으며 습득해 간 것이다.

작품에 더욱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용기도 얻었다. “처음 작품을 쓰는 거라 맞는지, 틀린 건지 의견이 분분했죠. 이렇게 유치하고 까불어대는 음악과 안무를 써도 되는 걸까라는 의심도 있었구요. 그런데 (리딩 공연에서 확인한) 반응이 좋더라고요. 더한 것도 할 수 있겠다 싶었죠.”

창작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한국전쟁 중 무인도에 갇혀 반목하던 남북한 병사들이 여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정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한정석 작가는 “화합과 희망을 상징하는 여신이란 존재를 통해 이해와 공감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지난해 제1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은 가능성이 실제로 옮겨지는 계기였다. 리딩 공연이 작품의 뼈대만을 보여주는 형식이었다면 서울뮤지컬페스티벌의 ‘예그린 앙코르’에 작품이 선정되면서 모든 것을 갖춘 공연을 전제로 한 작업이 진행됐다. 예그린 앙코르는 주목할 만한 창작 뮤지컬 몇 편을 선정해 경연을 벌인 뒤 결과에 따라 상금을 수여하고, 대관을 지원한다.

“공모전에 입상한다 해도 공연화된 작품이 많지는 않습니다. 손에 꼽을 정도죠. 근데 이거(예그린 앙코르)는 선정이 되면 무조건 무대에 올립니다.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신님은 예그린 앙코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지원금과 함께 공연장을 보장받았고 초연의 기회를 잡았다. 일반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게 지난 1월이었다. 최고 유료 객석 점유율이 95%를 찍은 날이 있을 정도로 기세를 올렸다.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지난 5월부터는 대학로에서 앙코르 공연 중이다. 부산에서도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영화, 출판 쪽에서 이런저런 제안이 있다고 한다.

내년 3월 정도에는 일본 진출 계획을 잡아 놓았다. 해외의 관객들이 여신님에게 호응을 보여줄까. 한국전쟁이란 시대 배경, 남북한 병사 간의 애증 등 여신님의 주요한 코드가 ‘한국적’이기 때문에 드는 걱정이다. 한 작가는 자신감을 보였다.

“(일본 관객들이) 이해하기에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요. 우리도 외국의 전쟁 영화 같은 거 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이야기 자체가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는 점도 있고요. 오히려 기대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남성 출연자들이 아기자기하게 무대를 꾸미고,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이 일본에서는 장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잇단 공모전 당선, 성공적인 초연에 해외진출까지, 신인 작가와 작곡가·연출가가 만든 창작 뮤지컬로서는 이례적인 성공이다.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이 창작 뮤지컬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꾸준하고 안정되게 발전하면서 실제 공연으로 결실을 거뒀다.

“행운이 반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여신님의 성공에 대해 한 작가가 웃으며 한 말이다. “저희도 되게 신기해해요. 작품을 쓰고 있을 때 마침 이런 제도들이 생겼잖아요. ‘이런 게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거는 우리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만든 거다, 죽어라 해야 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열의를 다하게 됩니다.”

‘행운’이라 말하는 이런 기회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대형 라이선스 공연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창작 뮤지컬이 직면한 환경이 좋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많은 창작자들이 기회를 얻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뮤지컬은 상업적인 장르라는 인식이 강해요. 상업성을 항상 염두에 둘 수밖에 없죠. 작가들은 이런 부분에서 혼란을 많이 느낍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시장이 원하는 이야기 사이에 괴리가 있죠. 이런 상황에서 계속 고생을 해야 하는 게 안타깝죠.”

여신님도 애초 상업적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며 창작 뮤지컬과 젊은 작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한 작가의 지적은 이어졌다.

“여신님에 대해서 ‘흥행하겠어?’, ‘누가 이걸 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상업성이라는 게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나라는 그런 게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그것대로 가야 된다고 하는 거죠. 그러니 시장은 점점 좁아지고, 창작자들은 공모전 외에는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기가 어려운 겁니다.”

지난해 훌쩍 성장한 뮤지컬 시장을 내한 공연을 한 해외작과 이름값으로 관심몰이에 성공한 ‘레베카’, ‘레미제라블’ 등의 라이선스 공연이 주도한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신님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 좋은 스템을 만들기 위한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한 작가도 “좋은 쪽으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선입견 없이 창작 뮤지컬을 대한 관객들이 있다. “(관객들은) 좋은 작품에 대해서는 선입견 없이 접근합니다. (창작이든 라이선스든) 작품 나름이라고 봐야겠죠. 일방적으로 창작 뮤지컬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습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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